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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혹/유춘희

정영진 2010. 10. 6. 14:26

불혹

 

 

유춘희

 

 

길바닥에 엎어졌는데
생각해보니 마흔이었다
일어서서 가야할 시간인데
둘러보니 부엌이었다
밥물은 끓어 넘치고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는 열쇠가 없어
울고 서 있었다. 생각을
일으켜야겠는데 줄곧
오래 입은 옷들이
발을 걸었다. 호호호
내가 네 엄마가 맞단다
어서 문을 열어주렴 꽁꽁 닫힌
문 속으로도 언제나 불쑥
들어와 있던 엄마가
베란다 바깥 허공을
따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엄마를 붙잡아야겠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내 소리를 파먹은 게
분명해 거실에 넘어졌는데
부엌이었다. 밥물은 끓어 넘치고
오래 입은 옷이 열쇠를 흔들며
호호호 웃고 있었다. 그에게서
더는 편지가 오지 않는다. 돌아보니
마흔이었다.

 

유춘희 (유정이) 시인

 

 1963년 천안 출생
 1986년 홍익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3년 월간 <현대시학> 신인상 당선 
 석사학위논문 <전봉건 시연구- 전쟁체험시를 중심으로> 
 시집 <내가 사랑한 도둑> 
 현재 동국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침 

 2002년  <동화 읽은 가족>으로 푸른문학상 수상
 2003년 동화집 < 이젠 비밀이 아니야>

 현재 홍익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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