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정연숙
장마가 문밖까지 찾아와
햇살에 다가가
눅눅한 가슴 말릴까
베란다 난간을 타고 내려오던
달팽이 한 마리
어쩌다 시선이 머물고
신기해 이리저리 만져보았더니
깜짝 놀라 귀를 세우고
눈치를 살피면서
나를 따라 나섭니다
눈물 많은 그대여
천천히 조금만 더
천천히 가도 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면
조금만 천천히 가리다
한나절의 방황으로 달려온 먼 길
한 걸음 비켜서서
솔바람 따라서
한가로이 오솔길 거닐다가
저녁이면 풀이슬에 젖어서
별을 헤아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