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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제림의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정영진 2010. 7. 24. 01:55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윤제림

  

강을 건너느라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말없이 앉아 있던 아줌마 하나가
동행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눈 온다
옆자리의 노인이 반쯤 감은 눈으로 앉아 있던 손자를 흔들며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으로
차창 밖을 가리킨다
눈 온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있던 젊은 남녀가
얼굴을 마주 본다
눈 온다
만화책을 읽고 앉았던 빨간 머리 계집애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든다
눈 온다
 

한강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 서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윤제림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 문학동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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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참 건강한 시를 읽습니다

따스한 눈길을 읽습니다

이래서 살만한 세상이고, 살만한 이유를 찾으면 행복합니다

다른 시 몇 개를 소개합니다. 

 

 

버드나무 아래
-윤제림

 

  대형트럭 하나가 뙤약볕 아래 꼼짝 않고 서 있다. 고단한
모양이다. 그 옆에 늙은 버드나무도 이파리 하나 흔들리지 않
는다. 그늘 아래 웃통을 벗고 사내가 네 활개를 벗고 잠들어
있다. 아니, 늘어져 있다. 언뜻 보면 죽은 것 같다. 우리 할머
니가 보셨으면 가서 흔들어 보라고 하셨을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그늘뿐이다.

 

 

가정식 백반
-윤제림

 

아침 됩니다 한밭 식당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낯 검은 사내들,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김이 난다
구두를 벗으니
발에서 김이 난다
 

아버지 한 사람이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밥 좀 많이 퍼요.

 

 

출처 : 이효경시인의 뜰
글쓴이 : 덕당 류창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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