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없는 돌
유안진
돌은 입이 없어 먹이사슬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득한 저 시대에는 돌도 입을 가져 먹고 살았는가. 돌이 먹은 수억만 년 전의 동식물들이, 소화되지도 못한 채 미라가 되어 박물관에 모였다.
입을 가진 돌은 아직도 먹어야 사는가. 전시장 수석(壽石)에는, 먹어 온 천둥과 번개 강물과 바닷물, 달과 별빛 눈 서리와 비 안개가 보인다. 물과 바람과 짐승의 소리까지, 더러는 소화되고 더러는 변형된 채 훤히 내비친다 얼비친다.
온 몸으로 삼켜 먹고도 입 없는 듯 입을 감춘 돌. 보리매미 울음조차 핥아 빨아 마시고, 시침떼며 살찐 몸에 자욱진 문양. 돌의 몸 돌의 색깔도 그의 식욕이었다. 고요는 아니었다.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메모 :
'초대 > ▒ 초대시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봄날을 가는 山經/송찬호 (0) | 2010.10.06 |
---|---|
[스크랩] 사냥꾼 레이드/마경덕 (0) | 2010.10.06 |
[스크랩] 나생이/김선우 (0) | 2010.10.06 |
[스크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0) | 2010.10.06 |
[스크랩] 소리의 그늘 속으로/이화은 (0) | 2010.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