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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발을 잃다/이재무

정영진 2010. 10. 6. 14:34

신발을 잃다

 

 

이재무



소음 자욱한 술집에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한참을 즐기다 나오는데 신발이 없다
눈 까뒤집고 찾아도 도망간 신발 돌아오지 않았다
돈 들여 장만한 새 신 아직도 길도 들이지 않았는데
감쪽같이 모습 감춘 것이다 타는 장작불처럼
혈색 좋은 주인 넉살 좋게 허허허 웃으며 건네는
누군가 버리고 간 다 해진 것 대충 걸쳐
문밖 나가서려는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찬바람,
그러잖아도 흥분으로 얼얼해진 뺨
사정없이 갈겨버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구멍난 양심에 있는 악담 없는 저주 퍼부어대도
맺혀던 분 쉬이 풀리지 않는데
어느만큼 걷다보니 문수 맞아 만만한 신
거짓말처럼 발에 가볍다
투덜대는 마음 읽어내고서는 발이 시키는 대로
다소곳한 게 여간 신통방통하지가 않다
그래 생각을 고치자
본래부터 내 것 어디 있으며 네 것이라고 영원할까
잠시 빌려쓰다가 제자리에 놓고 가는 것
우리네 짧은 설운 일생인 것을
새 신 신고 갔으니 구린 것 밟지 말고
새 마음으로 새 길 걸어 정직하게 이력 쌓기 바란다
나는 갑자기 새로워진 헌 신발로, 스스로의 언약을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새 눈
인주 삼아 도장 꾹꾹 내려찍으며
영하의 날씨 대취했으나 반듯하게 걸어 집으로 간다

 

 

이재무시인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석사과정)를 수료했다. 1983년 무크지 ‘삶의문학’과 계간 ‘문학과사회’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에「섣달 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별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생의 변방에서」, 그 밖의 저서에「신경림 문학앨범(공저)」「대표시 대표 평론(편저)」등이 있다. 제2회 난고문학상을 수상했다. 동국대대학원 · 한신대 · 추계예술대 · 청주과학대 · 한남대에서 시창작 강의를 하고 있으며, 계간 ‘시작’ 편집주간으로 있다

최근에 나온 시집 - 푸른 고집 (천년의시작)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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