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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외할머니 숟가락/손택수

정영진 2010. 10. 6. 14:35

외할머니의 숟가락

 

 

손택수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 국문과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당선
                       부산작가상, 현대시동인상 수상 
                       제22회 신동엽창작상 수상
                       시집 <호랑이 발자국>2003년 창비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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