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다리의 하루/정영진
추수가 끝난 주인 없는 보리밭에
종다리는 허가도 없이 둥치를 틀었다
어디서 만났는지는 몰라도 허름한 지푸라기 집에
각시를 느긋하게 앉혀 놓고
내일 비가 올는지 안 올는지도 모르면서
연실 먹이를 주워 나른다
식구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몰라도
저축해둔 돈도 없고
연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의료보험도 없고 노인 연금도 없고
청년 수당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훌륭한 직장을 잡은 것도 아니다
목소리는 좋은데 오디션에 밀렸는지
노래로 먹이를 구하진 못해도
들락달락 날품을 팔아 새끼들을 먹인다
종다리 하는 짓이 꼭 일만 알고 살던
고인이신 나의 부모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