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 정영진
나무를 베어내고 난 둥치에
세월을 갈아 먹고 자란 표시가 있다
살아온 여정에 따라서 찌그러지기도 하고
살만했던지 통통하게 살이 올랐기도 하고
맨 가운데부터 점점 늘어간 자국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살던 그 자리마다
짙고 옅게 잔물결처럼 예쁜 무늬가 펼쳐져 있다
저것들을 마냥 바라보다가 생각하던 중
오늘 밤에 내 삶도 싹둑 베어 나이테를 본다면
초년, 중년, 장년, 말년에 살던 그 자리마다
표식이 드러날 텐데 정말 걱정이다
나무처럼 진솔하게 살지도 못했거니와
내놓을만한 건더기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