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콩의 길 / 정영진
꼭 동의보감을 빌리지 않더라도
콩국수를 만들 때 노란 콩보다 검은 콩이 우선한다
검은깨가 검은 콩의 절친한 친구인 것만 봐도
콩은 어둠의 자식인지 노란 콩보다 검은 콩이 적자다
노란 옷을 입었을지라도 취직은 되는데 고생 덩어리다
콩나물로 직장을 잡은 콩은 대부분 노란 한데
검은 보자기를 두르고 햇빛을 보지 못해 누렇게 뜬 채
영양가도 없는 물만 내리 물릴 때까지 먹다가
자기를 데려갈 사람이 올 때까지 눈을 뜨면 안 된다
청국장에 취직이 되는 일도 답답한 시루에 갇혀
살이 어지간히 문드러질 때까지 어둠에 살아야 한다
노란 콩의 출세는 메주인데 가마솥에서 뜨거운 맛을 보다가
절구에 짓이겨지다가 떡판에서 실컷 두들겨 맞다가 버려져 쉴만하니
천장에 목을 매달아 햇볕을 쫴주더니 소금물이 담긴 항아리에
몸을 불리게 한다
그 고난이 끝나더라도 장독대에서
제 몸을 까무잡잡하게 삭여야 할 아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