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오분 전
정영진
벽시계가 밤을 재촉하는 듯하여 쳐다보니
시곗바늘의 눈동자들 11에서 12쪽으로 다 쏠려있는데
시속이 지겨워도 시침은 삐뚜름한 목을 반듯하게 세워가고
분속을 분풀이 하듯 분침은 숫자에다가 손가락질을 하고
초속으로 촐싹대는 초침은 이 밤을 어서 끝내야 한다고
눈알을 부라리며 불퉁거리고
하루 하루가 힘들다고 시계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시계 안에 시간이 사는 지 시곗바늘이 사는 지
살아 있다고 살아간다고 아직은 살만하다고
뚝딱이며 제자리서 쳇바퀴 도는 먹통을 쳐다보며
나도 살아 본다고 살아야 한다고 요리조리 머리통을 굴리다가
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내 질긴 목숨을 끌어낸 어머니 배속을 생각하고
세상에 나오면서 목숨 값을 치렀을까를 생각하다가
명부를 만들때 얼마를 치렀으며 목숨줄의 양과 질을 생각하고
특약사항을 적어 보니
1.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2. 돈도 이왕이면 많게
3. 이쁜 아내랑 잘 지낼 수 있게
4. 재주가 많아 즐겁게 살 수 있게
5. 공부도 잘하게
6. 권력도 좀 있게
7. 가족들이 편안하게
8. 아이들도 명랑하게
9. 머리도 영리하게
다음은 무엇을 적었을까를 생각하다가
돈 많이 들겠다고 생각하다가 잠들었는데
" 꿈속에서 이놈 허망한 생각을 버리거라 "
산신령의 혼쭐에 잠을 깼다가
ㅡ영ㅡ 수ㅡ증ㅡ
대한민국: 정영진 귀중
일금: 무료 원정
상기 금액을 목숨값으로 정히 영수함
우주 자율 방문 이용권도 당연히 허가함
단. 위 특약은 윗대 조상과 부모와 본인의 신분 여하에 따라 반드시 달라짐.
서기 0000 년 00 월 00 일
염 라 대 왕 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