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葉(연엽)에게
송수권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
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고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에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
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가치마늘 같던 발아!
蓮 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蓮 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
사진 - <펀 펀 즐거운 세상>님의 블로그에서

송수권 시인
194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산문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으며, 시집「산문에 기대어」「꿈꾸는 섬」「아도」「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 10시집「파천무」등이 있으며, 시선집「지리산 뻐꾹새」「들꽃세상」「여승」, 육필시선집「초록의 감옥」, 산문집「만다라의
바다」「태산풍류와 섬진강」「남도기행」등, 음식문화 기행집「남도의 맛과 멋」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제1회 영랑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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