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저녁/정연숙
정오를 거닐던 엷은 햇살은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제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찾아온 저녁
고요 그리고 적막만이
골목길을 차지해버린 겨울밤은
그저 을씨년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멀리 떨어져 빛을 발하는 별도
그도 단지 슬픔만은 아니리라
겨울바람이 가슴을 할키고 간 후
선뜻 손 내밀지 못하는
맨살에 와 닿는 차가움도
하얀 눈송이에 회상을 섞으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떨어지는
눈송이는 여전히 아름답다
투명한 햇살에 스러져도 행복한
그 때가 봄이었는지도 몰라
그 때 핀 꽃이 가장 아름다웠는지도
아직 그날의 봄과
그때의 꽃을 기다리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