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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의 조건

정영진 2010. 10. 26. 00:00

좋은 수필의 조건

                                                         

                                  권 대 근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에세이문예 편집인

  I. 열며                                        


- 좋은 수필가란, 마음 속에 마르지 않는 옹달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름다운 종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가진 사람, 다른 사람의 밭에 옮겨 심을 꽃씨를 가진 사람,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엽서를 가진 사람이다.

                                         - 권대근(수필평론가) -


  ‘관조의 눈’이란 예술적 심미안이요, ‘철학의 체’란 옥석을 구분한 삶의 진실이요, ‘산문으로 쓴 시’란 마부 작침의 고뇌 끝에 빚어지는 문장의 어려움이라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1) 주제의 문학적 차원으로의 승화 여부,  2) 화제의 효과적 선택, 배열 3) 함축된 표현 기법 - 이 세 가지로 얼마만큼 ‘작품’으로, ‘문학적 가치품’으로 끌어올려 지었느냐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문학에서 명작이라고 하면 시대를 초월하여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또한 사랑을 받아온 작품을 말한다. 이러한 작품은 오래 오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치 않는 인생의 궁극적 진리와 좌표, 그리고 쾌락적이며 유희적인 인생의 참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감동적인 교훈성이 작품 속에 내재되어야 한다. 명작이 탄생되는 데에는 작가의 역량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다음 열 가지 공통된 조건을 갖추고 있다.


  II. 좋은 수필의 조건


  1. 승화된 주제의 설정


  주제는 작가가 한 작품을 통하여 나타내고자하는 중심사상이다. 그리고 작품의 핵심이며 뼈대다.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1) 자신 있는 문제 (2) 관심과 흥미 (3) 좁고 깊게 (4) 시공 초월 (5) 통일된 인상, 이 다섯 가지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정의와 불의, 사랑, 희생, 봉사, 진리, 충과 효, 화해와 용서, 돈, 명예, 권력, 욕망 같은 것들을 수필가는 자신의 사상과 철학으로 용해시켜 예술미학으로 형상화시켜야 한다.  정비석의 「산정무한」, 이은상의 「해운대에서」,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은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명수필이다.


 2. 참신한 제재의 선정


  제재란 주제가 성립된 다음에 주제를 살리기 위한 자료, 즉 이야깃거리를 말한다. 제재는 주제를 뒷받침하고 설명해주는 보충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독자에게 얼마나 실감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주제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제재가 충실치 못하면 속빈 강정이 되고 만다.  따라서 제재를 선정할 때는 (1) 풍부 다양 (2) 명확 근거 (3)관심 흥미 (4) 연관 긴밀, 이 네 가지에 유의해야 한다. 이희승의 「딸깍발이」의 경우, 작가는 전혀 남이 생각하지 않은 기발한 아이디어로서 ‘딸깍발이’란 제목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게 한다.


 3. 인상적인 구성


  작가가 글을 쓸 때, 구성상의 기법 운용 능력은 작가의 요령이며, 기본이다. 같은 주제, 제재라 하더라도 작가가 내용과 사건을 어떻게 서술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줄거리를 보다 감동과 감흥의 정점을 향해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수필은 다른 모든 글과 같이 구성의 기술과 운용이 철저하게 요구되는 문학이다. 아사코를 모델로 한 피천득의 「인연」을 보면, 그는 시간과 공간을 병행하여 아사코의 성장, 변모하는 모습을 어린 소녀 시절, 여학생 시절, 남의 아내가 된 때의 모습 등을 구분하여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수필에서 제일 중요시되는 구성상의 기본적인 정신은 문맥의 통일성과 긴밀성과 강조성이다.


 4. 서정성의 묘사


  수필문학뿐 아니라 모든 문학에서 서정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정성은 문학에 있어서 문학이냐 아니냐 하는 문학 본질 문제까지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수필의 매력은 은은한 정서적 분위기에서 수필의 미적 감흥을 맛보게 하는 데 있다. 특히 수필문학에서 서정성이 결여되면 수필은 신변 잡담이나 평범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라든가 윤오영의 「달밤」 같은 작품은 서정성의 묘사가 돋보인다. 이효석은 낙엽 타는 냄새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동화된 자연합일 사상과 자연에 대한 순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윤오영은 「달밤」에서 한국적인 정서로 시골 달밤의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5. 적절한 제목


  수필에서 뿐 아니라 모든 문학에서 이름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 하면 이름과 그 이름의 대상의 개체는 동일시되어 그 개체를 대신하거나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필에서 작품을 이름 짓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퍼스트 임프레이션이며, 명함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압축이며 개념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제목은 (1)상징성 (2)매력적 (3)사회와 연관 (4)기대감과 호기심 (5)주제의식을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같은 대가도 작품을 완성해 놓고도 표제를 달지 못해 몇 달을 고민했던 것이다.


 6. 매력적인 서두


  명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서두가 짧고 간결하며 매력적이어야 한다. 작품의 서두는 대부분 작품의 성격과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으로서 매우 인상적이어야 한다. 독자에게 강한 인상과 함께 호감을 주고 이른 바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관심을 갖도록 제시해야 한다. 육상경기의 출발점과도 같은 것이 글의 서두이고 보면, 단거리 경주에 해당하는 수필의 서두는 그 글의 성패를 좌우하는 운명적 부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수필가들이 첫 줄, 첫 머리의 단 한 줄을 끌어내기 위해 피나는 산고를 겪는 것이다. 한흑구는 수필 한 편 쓰는 데 5년을 소요했다.


  7. 문체의 선택


  문장은 작가의 품격과 인생관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글 속에는 작가의 사상과 철학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인격화된 사고에 의한 달관과 통찰력이 풍겨 나와야 한다. 천박하거나 경망스럽지 않아야 한다. 또한 수필은 작가 자신의 고백적인 글이기 때문에 인생의 풍류와 낭만이 풍기는 여유 있는 문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감한 감각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문체야말로 각인 각색의 개성을 표출하기 때문에 자기의 독특한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스타일을 구축해야 한다. 현대의 수필에서는 간결한 문체, 부드럽고 온화한 내용과 정서의 표출에 적합한 우유체, 화려체가 주로 많이 쓰인다.


 8. 개성적이며 고백적 정신의 내재


  수필은 형식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작가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이기 때문에 뚜렷한 개성에 바탕한 자기를 고백하도록 해야 한다. 일찍이 김진섭은 “수필만큼 단적으로 쓴 사람 자신을 표현하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한 작가의 투철한 사상과 인생관의 투영을 강조한 바 있다. 고백의 정신의 자조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김광섭은 “수필은 진실한 태도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격”이라고 했다. 수필이 엄정하게 객관적인 문제를 다룬다 하더라도 그 수필가의 가슴에는 어딘가 한 가닥 토로하지 않고는 못 견딜  고백적 정서를 가지고 글을 쓰게 된다. 그 고백 속에는 인생의 진실과 미적 정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9. 함축성과 오묘한 여운의 내재


   이는 표현상의 기술과 문장 꾸밈의 수사와도 관계가 된다. 향기가 있고, 산뜻한 문장으로 여운이 있는 청아한 내용과 느낌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필은 소설처럼 서사적인 사건 내용을 전개해 내는 것이 아니며, 시처럼 압축적인 정서를 표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감성의 미학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수필에서의 함축성과 오묘한 여운은 소설에서의 사건이나 내용 미해결의 앤딩 처리도 아니요, 시에서의 감정 노출 직전이나 어떤 내용이나 사상을 상징하거나 암시하는 그런 의도적 표현수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사상과 영혼의 조용한 독백으로 끝을 맺을 때 탄생된다.


 10. 유머


  유머는 문학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 수필이 비록 짧은 문장이나 유머가 절실히 요구된다. 현대인처럼 심각한 사색이나 고뇌를 싫어하고 심오한 인생관이나 철학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학에서의 유머는 글의 내용에 있어서 빠르고 명확한 판단력을 제공해 주며, 명석한 해석을 내리게 한다. 또한 유머는 지루함을 없애주고 분위기 전환이나 신선한 감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에서 만인이 즐거워 할 유머는 예술의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쾌락의 미를 제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III. 닫으며 

  이상으로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는 조건 열 가지를 제시해 보았지만 이 외에도 명수필이 요구하는 조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위 열 가지가 좋은 수필이 갖추라고 요구하는 절대의 범위도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1) 승화된 주제의 설정, 2) 인상적인 구성, 3) 함축된 표현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글을 써 나가고 관심을 두고 수련해 나가다 보면,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일곱 가지는 결국 위의 세 가지 요소를 뒷받침하는 부수적 조건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작을 쓰기 위해서는 수필을 많이 써 보고, 명작수필을 많이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수필의 조건 / 이정림


수필은 다른 장르에 비해 독자에게 친근감을 안겨 주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수필이란 소설처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사실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우선 글을 쓴 이에게 인간적인 친근감을 갖게 한다. 둘째로, 수필은 흔히 그 소재를 생활 속에서 찾아내기 때문에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감성을 주게 되며, 그것이 곧 독자의 창작 의욕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셋째로, 수필은 그 길이가 길지 않기 때문에 특출한 작가적 역량이 없어도 그런 대로 글 한 편을 써낼 수 있을 것 같은 만만함이 독자로 하여금 수필에 친근감을 갖게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의 함정은 쉬워 보이는 듯한 바로 그 점에 있다. 동기는 그렇게 만만했지만 막상 글을 써보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것이 수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붓 가는 대로'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는 치밀한 구성과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것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을 쓰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이전에, 우선 어떤 글이 좋은 수필인가,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봄이 그 순서일 것 같다.


1. 주제가 있는 글


수필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그것을 작품화한다. 그런데 그 많은 일상사 가운데에서 유독 그 소재를 집어내어 글을 쓰고자 할 때는, 그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주제에 해당된다. 소재를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생각, 어떤 철학이 바로 글의 주제가 되며 중심사상이 되는 것이다.


소재만 있고 주제가 없으면, 그것은 신변잡기에 속한다. '잡기(雜記)'는 결코 수필일 수가 없다. 그것에 작품성을 부여하려면 반드시 주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그 주제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제는 평범성을 면치 못하게 됨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상식적인 사고에서 한 층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천착성이 필요한 것이다.


주제는 또한 그 소재에 걸맞지 않게 너무 비약적이거나 너무 거창해서는 안 된다. 그 소재에 맞는 주제(귀납적 구성), 그 주제에 맞는 소재(연역적 구성)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리하게 소재를 의미화시키려 들거나 주제를 독자에게 강요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어떤 소재 속에 자연스럽게 함축되어 있는 주제, 그리고 그것이 읽는 이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파고들 때, 우리는 좋은 수필 한 편을 읽었다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2.문장이 정확하고 꾸밈이 없는 글


"글이란 참된 데서 피어나고, 만드는 데서 시든다"(尹五榮)고 하였다. 이것은 곧 진실을 표현하는 데에는 수식이나 가식이 필요 없다는 말과도 바꿀 수 있다.


유치한 독자들이 선호하는 미문(美文)은 수필의 격(格)뿐만 아니라 작가의 격마저도 떨어뜨리게 하는 소녀적 문장이다. 문장은 솔직하면서도 담백해야 한다. 수식어에 또 수식어를 동원하는 분식(粉飾)이나, 시적(詩的)인 수법을 사용하여 지나치게 상징성을 띤 문장은 산문에서는 모두 적합지 않다. 또한 재치를 앞세워 기교에 능한 문장은, 작가의 치기성(稚氣性)을 드러내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수필은 산문이다. 산문이란 논리적으로 뜻에 충실한 글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적 산문이다. 그러므로 시적인 상징성과 비유를 수용하는 아량을 지니면서 한편 함축과 절제로써 문장에 탄력과 여운을 주어야 한다. 수필에서 아름다운 문장이란 바로 이런 문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문장은 또한 정확해야 한다. 정확한 문장이란 곧 문법에 충실한 문장을 뜻한다. 문장을 다루는 작가가 문장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은, 맨손으로 땅을 갈겠다고 나선 농부와 같다. 땅을 갈려면 보습의 날을 세워야 하는 것처럼, 글을 쓰려면 문장에 대한 기초가 우선적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문장이 있고 나서 내용인 것이다. 내용(사상)은 문장에 의해 전달됨을 상기할 때, 문장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지 않을 수 없다.


3. 소재를 보는 시각이 신선한 글


글을 쓰고 싶어도 글감(소재)이 없어서 못 쓴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이다. 글감은 우리 생활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것을 찾아내는 눈이 무디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중에는 작품으로 많이 다루어진 것들도 있다. 그런 글감은 신선하지 못하다. 그래서 신선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생활 속에서 작품의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과연 있을까.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보고 듣고 대해 본 것들을 작가들은 글감으로 채택한다. 그러기에 신선한 소재를 찾으라는 말 대신에, 소재를 보는 시각이 신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편이 좀더 적합한 표현이 될 것이다.


소재는 모든 사람의 공통적 체험일 수 있지만,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 작가만의 고유한 사상이나 철학이다. 글이 새로운가 아닌가 하는 것은, 바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시각이 새로운가 아닌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시각은 올발라야 한다. 잘못된 생각과 편견에 기초한 시각은 공감과 보편성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작가정신이 들어 있는 글


주부작가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체험의 폭이 좁기 때문에 늘 쓰는 글들이 남편 이야기가 아니면 아이들 이야기뿐이고, 잘 아는 일이라고는 밥 짓고 빨래하고 살림하는 것밖에는 없으니 글이 항상 그 범주 안에서만 맴돈다는 것이다.


수필이 체험의 문학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의 체험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을 꾸준히 쌓으라고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문제의식이란 곧 의식의 깨어 있음을 말한다.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 앞에는 스쳐 가는 것들이 모두 사유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의식이 깨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피안(彼岸)의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수필이 자기고백적인 글이기는 하나, 끝 간 데 없이 자기도취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을 어찌 문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정신이다. 작가는 자기의 눈을 통하여 타인을 보게 되고, 세상을 보게 되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정신이 결여되어 있으면, 한없이 사랑해도 못 다할 존재, 즉 자기 자신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수필이 어엿한 문학의 한 장르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맹목적인 자기애(自己愛)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수필이 오늘날처럼 부르주아적 액세서리에 만족해 있다면, 수필은 문학에서 영원히 서자(庶子)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필은 이제 선비만의 문학이 아니다. '선비의 문학'이라는 데 남다른 애착을 갖는 사람들은 선비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선비정신은 바로 작가정신과도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의 조건

 

수필은 다른 장르에 비해 독자에게 친근감을 안겨 주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수필이란 소설처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사실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우선 글을 쓴 이에게 인간적인 친근감을 갖게 한다. 둘째로, 수필은 흔히 그 소재를 생활 속에서 찾아내기 때문에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감성을 주게 되며, 그것이 곧 독자의 창작 의욕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셋째로, 수필은 그 길이가 길지 않기 때문에 특출한 작가적 역량이 없어도 그런 대로 글 한 편을 써낼 수 있을 것 같은 만만함이 독자로 하여금 수필에 친근감을 갖게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수필의 함정은 쉬워 보이는 듯한 바로 그 점에 있다. 동기는 그렇게 만만했지만 막상 글을 써보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것이 수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붓 가는 대로'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는 치밀한 구성과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것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을 쓰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이전에, 우선 어떤 글이 좋은 수필인가,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봄이 그 순서일 것 같다.


1. 주제가 있는 글


수필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그것을 작품화한다. 그런데 그 많은 일상사 가운데에서 유독 그 소재를 집어내어 글을 쓰고자 할 때는, 그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주제에 해당된다. 소재를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생각, 어떤 철학이 바로 글의 주제가 되며 중심사상이 되는 것이다.


소재만 있고 주제가 없으면, 그것은 신변잡기에 속한다. '잡기(雜記)'는 결코 수필일 수가 없다. 그것에 작품성을 부여하려면 반드시 주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그 주제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제는 평범성을 면치 못하게 됨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상식적인 사고에서 한 층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천착성이 필요한 것이다.


주제는 또한 그 소재에 걸맞지 않게 너무 비약적이거나 너무 거창해서는 안 된다. 그 소재에 맞는 주제(귀납적 구성), 그 주제에 맞는 소재(연역적 구성)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리하게 소재를 의미화시키려 들거나 주제를 독자에게 강요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어떤 소재 속에 자연스럽게 함축되어 있는 주제, 그리고 그것이 읽는 이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파고들 때, 우리는 좋은 수필 한 편을 읽었다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2.문장이 정확하고 꾸밈이 없는 글


"글이란 참된 데서 피어나고, 만드는 데서 시든다"(尹五榮)고 하였다. 이것은 곧 진실을 표현하는 데에는 수식이나 가식이 필요 없다는 말과도 바꿀 수 있다.


유치한 독자들이 선호하는 미문(美文)은 수필의 격(格)뿐만 아니라 작가의 격마저도 떨어뜨리게 하는 소녀적 문장이다. 문장은 솔직하면서도 담백해야 한다. 수식어에 또 수식어를 동원하는 분식(粉飾)이나, 시적(詩的)인 수법을 사용하여 지나치게 상징성을 띤 문장은 산문에서는 모두 적합치 않다. 또한 재치를 앞세워 기교에 능한 문장은, 작가의 치기성(稚氣性)을 드러내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수필은 산문이다. 산문이란 논리적으로 뜻에 충실한 글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적 산문이다. 그러므로 시적인 상징성과 비유를 수용하는 아량을 지니면서 한편 함축과 절제로써 문장에 탄력과 여운을 주어야 한다. 수필에서 아름다운 문장이란 바로 이런 문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문장은 또한 정확해야 한다. 정확한 문장이란 곧 문법에 충실한 문장을 뜻한다. 문장을 다루는 작가가 문장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은, 맨손으로 땅을 갈겠다고 나선 농부와 같다. 땅을 갈려면 보습의 날을 세워야 하는 것처럼, 글을 쓰려면 문장에 대한 기초가 우선적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문장이 있고 나서 내용인 것이다. 내용(사상)은 문장에 의해 전달됨을 상기할 때, 문장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지 않을 수 없다.


3. 소재를 보는 시각이 신선한 글


글을 쓰고 싶어도 글감(소재)이 없어서 못 쓴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이다. 글감은 우리 생활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것을 찾아내는 눈이 무디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중에는 작품으로 많이 다루어진 것들도 있다. 그런 글감은 신선하지 못하다. 그래서 신선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생활 속에서 작품의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과연 있을까.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보고 듣고 대해 본 것들을 작가들은 글감으로 채택한다. 그러기에 신선한 소재를 찾으라는 말 대신에, 소재를 보는 시각이 신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편이 좀더 적합한 표현이 될 것이다.


소재는 모든 사람의 공통적 체험일 수 있지만,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 작가만의 고유한 사상이나 철학이다. 글이 새로운가 아닌가 하는 것은, 바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시각이 새로운가 아닌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시각은 올발라야 한다. 잘못된 생각과 편견에 기초한 시각은 공감과 보편성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작가정신이 들어 있는 글


주부작가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체험의 폭이 좁기 때문에 늘 쓰는 글들이 남편 이야기가 아니면 아이들 이야기뿐이고, 잘 아는 일이라고는 밥짓고 빨래하고 살림하는 것밖에는 없으니 글이 항상 그 범주 안에서만 맴돈다는 것이다.


수필이 체험의 문학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의 체험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을 꾸준히 쌓으라고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문제의식이란 곧 의식의 깨어 있음을 말한다.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 앞에는 스쳐 가는 것들이 모두 사유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의식이 깨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피안(彼岸)의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수필이 자기고백적인 글이기는 하나, 끝간 데 없이 자기도취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을 어찌 문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글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정신이다. 작가는 자기의 눈을 통하여 타인을 보게 되고, 세상을 보게 되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정신이 결여되어 있으면, 한없이 사랑해도 못 다할 존재, 즉 자기 자신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수필이 어엿한 문학의 한 장르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맹목적인 자기애(自己愛)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수필이 오늘날처럼 부르주아적 액세서리에 만족해 있다면, 수필은 문학에서 영원히 서자(庶子)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필은 이제 선비만의 문학이 아니다. '선비의 문학'이라는 데 남다른 애착을 갖는 사람들은 선비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선비정신은 바로 작가정신과도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한국수필평론》(범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