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산문시적 성격
방송통신대학
- 유명 교수 -
우리 시가 뚜렷한 운문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음수율에 기초한 음률
성이 시의 특징이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시가 지닌 특징을 다시 생각하게 만
든다. 근대시의 발달은 자유시로의 이행과정이라고 할 만큼 근대시에서 자유시
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이 자유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유시가 극복해야 할 정형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우리 근대문학 초창기에
전통적인 시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노력들이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그 예 중의 하나가 바로 근대시를 확립해 가던 시기인 1920년대 중반의 시조
부흥 운동이다. 시조는 3장 6구의 정형성을 유지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 말의 음
률성을 한껏 살려 냈던 시형식이다. 이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함께 거론된 민요
시 운동 또한 전통적이면서도 정형적인 요소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할 것
이다. 그것을 효과적으로 달성한 시인이 7.5조를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우리시
의 정형적 요소를 유감없이 발휘한 김소월이다. 소월 시가 음률성을 최대로 활
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에서 운문의 개념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에
비해 운문의 개념이 명확하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음수율이 매우 중요
한 음률성 정도만 거론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자리에서 시와 산문은 대체로
관습을 따라 소재와 그 처리에 있어서의 특정 경향, 비교적 짤막하게 압축된
간결성, 또 적절한 행갈이 등에 의해 구분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어느 나라 문
학에서나 시도 관습의 하나요, 또 제도이다. 그렇지만 우리 시에 운문 개념 명
확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우리 시에는 산문시적 성격이 매우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음률성을 지향한 김소월과 터놓고 산문시를 지향한 한용운이 20년대 초의
우리 시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후 현대시는 이 두 가지
경향 사이에서 주저하고 선택하고 절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음
률성을 지향하게 되면 시는 말의 반복과 함께 밀도가 엷어지는 경향이 있고, 산
문시를 지향할 때 시는 깊이를 얻는 대신 시 고유의 음률성을 소홀히 하게 되
는 것이다. 김소월의 시에서는 사상적인 깊이를 보기 어렵지만 음율성과 함께
흐르는 정서의 강렬함을 볼 수 있는 반면, 한용운의 시에서 우리는 깊은 사상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시가 뜻과 깊이를 지향하게 되면 노래
말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깅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이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따.
-백석,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중에서
이 시는 백석의 대표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지난 강좌에서 살
핀 김소월의 시나 박목월, 정지용의 음률성을 지닌 시편들과는 전혀 상반된 속
성을 지닌 시라고 할 것이다. 운문이라고 하기보다 서슴없이 산문 쓰듯이 쓴 작
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시라고 규정하게 하는 것은 산문 쓰
듯 했으면서도 길이가 비교적 짧고 또 불규칙적인 대로 행갈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 고독의 슬픔이라는 시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
도 이에 기여할 것이다. 화자는 여행길에 어느 목수의 집에서 잠시 기숙을 하게
되면서 느끼는 향수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을 잔잔하게 토로하는 것인데, 그
발화 방식이 일반적인 운문적인 속성을 지닌 글들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백석 시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나타난다. 물론 그의 시에도 음
률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이 보이는 시도 있다. 한 행이 상당히 길어서
산문시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3-5자의 음수율을 지닌 단어들이 중
심이 된 <모닥불>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
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
치도 기와장도 닭의ㅈㅣㅊ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모닥불> 중에서)과 같은 구절
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측면은 백석시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산문시적인 특징, 음률성을 부정한 자리에 백석시의 특징이 있
는 것이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과 같은 작품은 이러한 백석시의 특성을 가
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음률지향의 시편이기보다는 서슴없는 산문시라
할 것이다. 이렇게 산문시적 요인이 많다는 것이 우리 시의 한 특징이고 이런
지적은 윤동주나 서정주 등의 명편에도 그대로 해당될 것이다.
- 시적 기능 -
그렇다면 산문시다운 성격을 지닌 우리 현대시에서 그 음률성 말고도 시
적인 요소로 간주될 수 있는 것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여느 산문과 산문
시를 구분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문학연구에 언어학을
적용한 러시아 형식주의나 그 흐름의 이론은 하나의 해답을 시도한다. 문학은
이를테면 어떤 언어 특성을 확장하고 응용한 것이며, 그 이외의 것일 수 없다
는 생각은 형식주의 접근법이 의존하고 있는 기본적인 발상이다. 시라는 것의
개념이 시간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인 만큼 불안정한 것이긴 하지만 시적 기능
은 분리해서 독립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이론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시적 기능 혹은 시적인 것이 드러나는가? 낱말이 지칭하는
대상의 단순한 묘사나 감정의 폭발이 아니고 낱말로서 감지될 때, 낱말들과
낱말들의 구성, 그들의 의미와 외적 및 내적 형태가 그저 현실을 지칭하는 대
산 무게와 그들 자신의 가치를 획득할 때 시적인 것은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반세기 후에 발표된 논문에서 위와 같은 취지는 다음과 같이 극
명하게 요약된다.
"시적 기능은 언어 예술에 있어 유일한 기능은 아니며 단지 그 지배적이고
규정적인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그것은 여타의 언어 활동에서는 부차적
이고 부수적인 요소로서 작동한다. 그 기능은 기호의 觸知性을 높이고 기호와
대상물 사이의 근본적인 분리를 증진시킨다."
이와 같이 시적 기능을 정의하고 있는 야콥슨의 소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말하는 의사 소통의 여섯 가지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설명된다.
방송통신대학
- 유명 교수 -
우리 시가 뚜렷한 운문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음수율에 기초한 음률
성이 시의 특징이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시가 지닌 특징을 다시 생각하게 만
든다. 근대시의 발달은 자유시로의 이행과정이라고 할 만큼 근대시에서 자유시
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이 자유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유시가 극복해야 할 정형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우리 근대문학 초창기에
전통적인 시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노력들이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그 예 중의 하나가 바로 근대시를 확립해 가던 시기인 1920년대 중반의 시조
부흥 운동이다. 시조는 3장 6구의 정형성을 유지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 말의 음
률성을 한껏 살려 냈던 시형식이다. 이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함께 거론된 민요
시 운동 또한 전통적이면서도 정형적인 요소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할 것
이다. 그것을 효과적으로 달성한 시인이 7.5조를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우리시
의 정형적 요소를 유감없이 발휘한 김소월이다. 소월 시가 음률성을 최대로 활
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에서 운문의 개념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에
비해 운문의 개념이 명확하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음수율이 매우 중요
한 음률성 정도만 거론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자리에서 시와 산문은 대체로
관습을 따라 소재와 그 처리에 있어서의 특정 경향, 비교적 짤막하게 압축된
간결성, 또 적절한 행갈이 등에 의해 구분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어느 나라 문
학에서나 시도 관습의 하나요, 또 제도이다. 그렇지만 우리 시에 운문 개념 명
확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우리 시에는 산문시적 성격이 매우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음률성을 지향한 김소월과 터놓고 산문시를 지향한 한용운이 20년대 초의
우리 시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후 현대시는 이 두 가지
경향 사이에서 주저하고 선택하고 절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음
률성을 지향하게 되면 시는 말의 반복과 함께 밀도가 엷어지는 경향이 있고, 산
문시를 지향할 때 시는 깊이를 얻는 대신 시 고유의 음률성을 소홀히 하게 되
는 것이다. 김소월의 시에서는 사상적인 깊이를 보기 어렵지만 음율성과 함께
흐르는 정서의 강렬함을 볼 수 있는 반면, 한용운의 시에서 우리는 깊은 사상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시가 뜻과 깊이를 지향하게 되면 노래
말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깅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이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따.
-백석,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중에서
이 시는 백석의 대표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지난 강좌에서 살
핀 김소월의 시나 박목월, 정지용의 음률성을 지닌 시편들과는 전혀 상반된 속
성을 지닌 시라고 할 것이다. 운문이라고 하기보다 서슴없이 산문 쓰듯이 쓴 작
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시라고 규정하게 하는 것은 산문 쓰
듯 했으면서도 길이가 비교적 짧고 또 불규칙적인 대로 행갈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 고독의 슬픔이라는 시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
도 이에 기여할 것이다. 화자는 여행길에 어느 목수의 집에서 잠시 기숙을 하게
되면서 느끼는 향수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을 잔잔하게 토로하는 것인데, 그
발화 방식이 일반적인 운문적인 속성을 지닌 글들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백석 시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나타난다. 물론 그의 시에도 음
률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이 보이는 시도 있다. 한 행이 상당히 길어서
산문시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3-5자의 음수율을 지닌 단어들이 중
심이 된 <모닥불>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
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
치도 기와장도 닭의ㅈㅣㅊ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모닥불> 중에서)과 같은 구절
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측면은 백석시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산문시적인 특징, 음률성을 부정한 자리에 백석시의 특징이 있
는 것이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과 같은 작품은 이러한 백석시의 특성을 가
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음률지향의 시편이기보다는 서슴없는 산문시라
할 것이다. 이렇게 산문시적 요인이 많다는 것이 우리 시의 한 특징이고 이런
지적은 윤동주나 서정주 등의 명편에도 그대로 해당될 것이다.
- 시적 기능 -
그렇다면 산문시다운 성격을 지닌 우리 현대시에서 그 음률성 말고도 시
적인 요소로 간주될 수 있는 것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여느 산문과 산문
시를 구분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문학연구에 언어학을
적용한 러시아 형식주의나 그 흐름의 이론은 하나의 해답을 시도한다. 문학은
이를테면 어떤 언어 특성을 확장하고 응용한 것이며, 그 이외의 것일 수 없다
는 생각은 형식주의 접근법이 의존하고 있는 기본적인 발상이다. 시라는 것의
개념이 시간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인 만큼 불안정한 것이긴 하지만 시적 기능
은 분리해서 독립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이론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시적 기능 혹은 시적인 것이 드러나는가? 낱말이 지칭하는
대상의 단순한 묘사나 감정의 폭발이 아니고 낱말로서 감지될 때, 낱말들과
낱말들의 구성, 그들의 의미와 외적 및 내적 형태가 그저 현실을 지칭하는 대
산 무게와 그들 자신의 가치를 획득할 때 시적인 것은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반세기 후에 발표된 논문에서 위와 같은 취지는 다음과 같이 극
명하게 요약된다.
"시적 기능은 언어 예술에 있어 유일한 기능은 아니며 단지 그 지배적이고
규정적인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그것은 여타의 언어 활동에서는 부차적
이고 부수적인 요소로서 작동한다. 그 기능은 기호의 觸知性을 높이고 기호와
대상물 사이의 근본적인 분리를 증진시킨다."
이와 같이 시적 기능을 정의하고 있는 야콥슨의 소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말하는 의사 소통의 여섯 가지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설명된다.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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