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土 사랑과 日野慾 斷不容 決意 다진 詩集
『내 사랑 독도』(새한국시인협회편) 時評(1)
新毫 - 문학평론가
들어가는 말
터무니없는 ‘내선일체’와 허울 좋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전세계를 지배하려던 야욕이 꺾이자, 어쩔 수 없이 ‘평화헌법’을 제정했던 일본정부는, 패전 갑년(甲年)을 넘기지 못해, 다시 재무장하여 옛 꿈을 되찾으려 혈안이 됨으로써, 자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로 하여금 “일본, 평화헌법 손대면 고립될 것”1)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는 바,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중국 부총리의 일본 총리와의 회담 돌연취소 귀국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이러한 우경화 군국주의에 대한 범(汎)아시아권의 항의가 빗발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4월 하순 마지못해 고이즈미 총리의 입을 통해 사과의 운은 떼었으나, 국회의원 등 다른 정치인들이 야스꾸니신사를 참배함으로써 그들의 속셈을 드러내고 말았으니, 이는 역사 왜곡으로도 부족하여, 신라 지증왕 때부터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러온 엄연한 우리 영토인 ‘독도(獨島)’에 대한 재침 야욕과도 맞물려, 칠천먼 백의민족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졸고는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독도’를 사수하려는 결의를 다진 44명의 우리 시인들의 작품을 엮어낸 시집『내 사랑 독도』(새한국시인협회편, 문학세계사발행)의 정당성을, 일본의 양심적인 시인들의 작품을 들어 밝힘으로써, 일본 정부 당국자의 맹성을 촉구하여 양국간에 불행한 관계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글이어서, 그 중 첫 회는 이 시집의 발행인이기도 한 김종해 시인을 비롯하여 이근배․홍윤숙․유안진․신경림 등 남녀 원로시인들의 작품을, 타카다 토쿠에를 비롯한 일본 시인들의 시를 함께 들어 평설해 나가겠다.
평설에 들어가기 전에, 일본이 언제,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의 ‘독도’를 넘보게 되었는지 간단히 적어두는 것이 이해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의 세력판도를 바꿔버린 것은 역사적 사건은 두루 아다시피 러․일 전쟁이었거니와, 그 전쟁을 판가름하게 된 기틀이야말로,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1905년) 5월 하순 대마(對馬) 해협에서 맞붙은 러․양 해군간에 치러진 일대 해전이었다. 러시아 함대 중 당초의 목적지인 불라디보스토크에 다다른 군함은 불과 3척뿐이었고, 사망자가 수천을 넘은 사실은, 그 참상이 얼마나 처절했는가는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미 전세가 기울자, 필사적인 둔주(遁走)와 악착 같은 추격이 바로 우리의 근해에서 이루어졌으니, 독도야말로 그 끔찍한 현장과 그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진상을 목도하여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를 쓰고 달아나는 러시아 함정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쫓던 일본 해군들은, 천연 그대로의 독도에서, 적을 가차없이 박살내는 데 쓰이는 ‘죽도(竹刀=시나이)’와 ‘죽창(竹槍)’을 떠올리는 한편, 한국을 어렵지않게 침략하여 그 여세를 몰아 중원 대륙도 파죽지새로 몰아 부칠 안성맞춤인 교두보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대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섬을 ‘다케시마(竹島)’라 이름지어, 시마네현(島根縣)으로 하여금 관할케 하고, ‘보호’라는 핑계를 내세워 ‘을사조약’을 강요하여 실질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문서에 의해 전세계에 알린 현식적 매듭은 5년 후의 ‘한일밥방’이었으니, 여기서도 겉과 속이 딴판 다른 그들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상대의 손발을 묶어놓고 남의 물건을 절취하고도, 겉으로는 상대가 동의, 아닌 자진 헌납이라 주장하는 처사와도 같은 것이다.
1. <독도여 함께 가자> (김종해 작)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김종해 시인의 <독도여 함께 가자>를 읽으면, 이 작품이 ‘독도’를 둘러싸고 벌여온 한일간의 100년간의 역사를을 한눈으로 되돌아보게 해 주는 명시임을 깨닫게 된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강도 일본의 군국주의는 우리 국권을 도적질했고
우리 땅과 바다, 산하를 훔쳤다.
독도를 저희 일본땅 다케시마竹島로 강제 편입시킨 것은 1905년,
시네마현縣 말마따나
100년이 되었다.
그 100년 동안 우리는 악몽에 시달렸다.
식민지의 어둠 속에 부조된 전범戰犯들의 얼굴을
우리는 잊지못한다.
죽는 날까지 백배 사죄해도 풀리지않을
식민지의 암흑을 우리는
우리 자신에서 지울 수 없다.
8․15 광복과 함께 돌려받은 영토
독도와 독도 주변의 바다를 건드리지 마라
섬과 섬 사이를 떼지어 나는
괭이갈매기마저 울부짖는다.
남의 섬, 남의 바다를 또 한번
제것인 양 훔치려 하는 자
더 이상 군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지 마라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를 존중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과 함께
오늘 우리는 노래한다.
독도여, 너는 이제 혼다가 아니다.
독도여, 함께 가자.2)
총 24행이란 적지 않은 시행을 전연으로 묶은 이유는 겉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일 기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첫 줄부터 우리의 치욕만이 아니라 일제의 간교함도 아울러 깨우쳐 주니, 그 핵심은 ‘을사조약’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파죽지세로 승전한 여세를 몰아 다시 파죽지세로 강요한 속임수에 의한 ‘늑약’이었다는 선언에 있다. 앞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을사조약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릴 속이기 위해 강요한 조약이고, 그에 따라 차후의 일본정부의 행보 또한 이 궤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들의 처사가 정당하지 못한 속임수였음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일본정부에 기만 당하며 살아온 일본인들 자신들도 진상을 깨닫자 원망하게 되었음이, 양심적인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서도 입증되니, 그 한 예가 바로 타카다 토쿠에의 <침략자>이다.
모르는 체 시치미 떼고 있단다
일본의 어른들은
앗아온 쌀로
우리 아이들이
커왔다는 사실이나
빼앗긴
바다 건너 저 쪽
어리디 어린 아이들이
가냘프게 숨져간 사실을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말을 덮는다
너는 죄인의 자식이라고
처음부터
가르쳐 주었더라면
나름대로 살아가는 눈을 떴을텐데
선하디 선한 사람인 양 거짓 미소 짓지 않고
침략자의 자손으로
똑같은 죄를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았을텐데3)
이러한 기만으로 말미암아 겪게 된 우리의 피해가 김종해 시인의 작품에서는 무의식세계에서 엄습받아 방어할 방도가 없는 ‘악몽’으로 표현되어, 그렇게 만들어버린 일본 정부 요인들이 ‘전범’으로 의식되는데, 이러한 의식이 정당한 것 또한 타카다 시인의 한 작품 - 침략 후 조선의 소년 소녀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부려먹고, 심지어는 저들의 세계침략을 위해 전 아시아에 출병시킨 ‘황군’의 성 노예, 곧 ‘위안부’로 만들어 버렸음도 시작품으로 증언되는 것이다. 소년의 경우를 노래한 시는 <강제연행(强制連行)>이다.
여물어도
거둬들인 사람의
입에는 들어갈 희망이 없어
벼이삭은 무거워져도 슬프구나
그래도
저물어 가는 산간 마을은
아름다운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황혼이 짙어지자
검은 그림자가 남몰래 다가와
소년의
소년의 겁에 질린 어깨에 손을 얹으니
온 몸의 모공은
피가 역류할 만큼 털을 세우고
고막은 찢어질 정도로 크게 울리고
해가 완전히 사라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눈동자만이 유난히 빛나고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 아침 햇살을 등 뒤에로 받으며
침략자의 나라에로 재촉 당하며
침략자의 나라에로 바다를 건넌다4)
희망이 없는 황폐화된 조국도 돌보지 못하고 떠나는 주체가 ‘침략자의 나라로’라는 결연의 반복에 의해 바로 식민지 조선의 아들임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한편, 소녀의 경우를 읊은 시는 <위안부(慰安婦) 사냥>이다.
잊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그 무렵
밀짚모자를 짜고 있던
예닐곱 가량의 소녀를
조개껍질 단추를 열심히 만들고 있던
젊은 여공들
정어리공장에서 땀흘리며 일하던
처녀들
눈물이 마를 사이도 없이
알지도 못하는 땅 한 구석으로 쫓겨가
“아이고” 목메인 울음조차 빼앗기고 발길에 짓밟혔으니
잊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신의 탓으로 돌린다해도
너무나 길었던 전쟁 탓으로 돌린다해도
자신의 전부를 버리고 싶을 만치
그때의 더러운 죄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눈을 뜬 채 이 세상에 이별을 고하고
죽어가며 남긴 아가씨들의 마지막 절규
“아이고”
잊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5)
마땅히 지켜야 할 일이 지켜지지 못하도록 강제된 식민지 조선 여성들의 비극이 빼앗겨버린 울음소리 ‘아이고’의 반복에 의해 갈도 표현되어 있다. 이는 인두겁을 쓰지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짐승과 진배 없는 짓으로, 아무리 지탄을 받아도 지나침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일본당국은 이를 부정하며 보상은 한일협정이 끝났단는 강변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뻔뻔스럽기 이를 데가 없는 처사이다.
이러한 작태를 김종해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우리의 학생시인 윤동주의 양심과 대비시켜 ‘백배 사죄해도 풀리지 않을/ 식민지의 암흑’이라 노래하여, 결코 지울 수 없음을 노래함으로써, 재침 단불용(斷不容)의 결의를 다진다.
이러한 결의의 정당함은, 잔인무도한 짓을 감행하고도 똑 잡아떼는 자국 당국자들의 철면피한 양심망각증을 노래한 타카다 시인의 <말소(抹消)>에 의해서도 능히 입증이 된다.
침략 / 무슨 말이냐고요 / 제국주의 / 그런 시대도 있었습니다 / 징용장 /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습니다 / 항복 / 무슨 말입니까 / 강제연행 / 품팔이가 와전된 것은 아닌지요 / 한반도 / 글쎄요, 잘 모르는 나라입니다만 / 조선쌀 / 아주 오래 전 먹어본 듯한 느낌입니다만 / 맛까지야 기억할 수 있나요 / 천황폐하 / 남편과 자식의 몫까지 / 장수하시기 바랍니다 / 일본사람 / 모두는 / 너무도 충실히 잊어버린답니다6)
그들이 일으킨 세계 제2차대전이 침략이었음과 그 대가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원자탄을 맞고도 이토록 쉽게 잊어먹는 이유는 정작 제국주의적 재침의 속셈을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전세계가 입을 모아 일본의 장래를 걱정하는 데도 우이독경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김종해 시인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지 마라’고 경고하여, 이젠 독도는 ‘혼자가 아님’을 강조하여 ‘함께 가자’고 청유하여 작품을 마누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당국자들의 제국주의적 성향은, 실은 지난 세기 30년대에『전쟁』이란 시집으로 자신들의 제국주의 참략상을 노래하여 경계했던 기따가와 후유히꼬(北의川冬彦)의 시가 유용한 반성자료가 되는 동시에, ‘독도’가 결코 ‘혼자가 아’닌 존재임도 아울러 시사해 준다. 지면 사정으로 1행시를 인용한다.
군항(軍港)을 내장(內臟)하고 있다.7)
이 말[馬]는 여느 말과는 달리, 오장육부 대신 전함․순양함․구축함, 심지어는 항공모함까지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육군까지도 아우르는 거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표상인 것이다. 이런 양심적이고도 뛰어난 자국 시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점에 일제가 겪은 비극적 패망의 원인이 숨겨져 있는 것이니, 일본 당국자는 하루 바삐 어리석은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며, 그러한 제 정신 돌이키기에 우리 김종해 시인의 시작품의 영향이 적지 않으리라고 기대된다.
2. <독도 만세> (이근배 작)
이번에는 이근배 시인의 전 6연 49행의 장시 <독도 만세>에 눈을 돌리기로 하자. 시어의 일부인 ‘만세’부터가 감격과 결의를 말해 주고 있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하는 시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일이었다
처음 백두대간을 빚고
해 뜨는 쪽으로 바다를 앉힐 때
날마다 태어나는 빛의 아들
두 손으로 받아 올리라고
여기 국토의 솟을대문 독도를 세운 것은
누억년 비, 바람 이겨내고
높은 파도 잠재우며
오직 한반도의 억센 뿌리
눈 부릅뜨고 지켜왔거니
이 홀로 우뚝 솟은 봉우리에
내 나라의 혼불이 타고 있구나
독도는 섬이 아니다
단군사직의 제단이다
광개토대왕의 성벽이다
바다의 용이 된 문무대왕의 뿔이다
불을 뿜는 충무공의 거북선이다
최익현이다, 안중근이다, 윤봉길이다
아니 오천 년 역사이다
칠천만 겨레이다
누가 함부로
이 성스러운 금표禁標를 넘보겠느냐
백두대간이 젖을 물려 키운 일본열도
먹을 것, 입을 것을 일러주고
말도 글도 가르쳤더니
먼 옛날부터 들고양이처럼 기어와서
우리 것을 빼앗고 훔치다가
끝내는 나라까지 삼키었던
그 죄값 치르기도 전에
어찌 간사한 혀를 널름거리는 것이냐
우리는 듣는다
바다 속 깊이 끓어오르는
용암의 소리를
오래 참아온 노여움이
마침내 불기둥으로 솟아오르려
몸부림치는 아우성을
오냐! 한 발짝만 더 나서라
이제 독도는 활화산이 되어
일본 열도를 침몰시키리라
아예 침략자의 종말을 보여주리라
그렇다
독도는 사랑이고 평화이고 자유이다
오늘 우리 목을 놓아 독도 만세를 부르자
내 국토의 살 한 점 피 한 방울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서로 얼싸 부등켜안고
영원한 독도선언을 외치자
하늘도 땅도 바다도 목청을 여는
독도 만세를 부르자.
‘독도’를 참신한 시각적 은유에 의해 ‘국토의 솟을대문’으로 표현한 솜씨가 개성적이거니와, 그를 세운 것이 ‘하늘의 일’임을 깨달은 것 또한 참신하다. 그러기에 ‘한반도의 억센 뿌리’로 ‘내 나라의 혼불’이 타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단군으로부터 안중근을 거쳐 윤봉근에 이르는 국조․충신이요, 곧 역사와 겨레를 의미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안중근의 이름이 나온 계제에 이와 관련된 일본시인의 시 <安重根의 碑>에 나오는 “ ‘半島의 아픔’에 견디는 이국시인이 / 무릎을 꿇고 언제까지나 기도하며 돌이 되어간다.”8)는 구절을 읽고 넘어가기로 하자. 왜냐 하면 여간해선 뉘우치기를 드러내지 않는 저들이기는 하나, 정당한 자주독립을 위해 싸워 전세계가 우러르는 안 의사(義士)를 그토록 참혹하게 죽음에 이르게 한 행적은 온 세계에 대해서 절대로 얼굴이 서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제4연에서는 우리가 베푼 은혜를 침략으로 갚은 그들의 교활성을 노래하였으니, 일본인 중에서도 양심 있는 시인은 일찍부터 이 점을 자인하고 노래한 이가 있으니, 그 한 예가 이바리기 노리꼬(茨木のり子)이다. <칠석(七夕)>을 읽어 보자.
紀元前부터 나타나 차츰 그 형태를 가다듬어 온 / 漢民族의 아름다운 古譚 / 일찍이 萬葉人이
즐겨 쓰던 素材도 / 근원을 말하면 고구려, 백제 경유로 멀리 / 傳來된 것이 아니었던가 / 文字, 織物, 鐵, 革, 陶器, / 말사육, 그림, 紙物, 술만들기 / 옷만들기, 대장간, 學者에 노예 / 얼마나
많은 것들이 건너올 것인가 / 옛 恩師의 후예들은 / 여기서도 저기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敬遠되고 / 저녁바람 쏘이러 온 사람조차도 尾行인가 겁먹고 있다.9)
제5연에서 더 이상의 침략은 ‘일본 열도’의 ‘침몰’이자 ‘침략자의 종말’임을 경고, 끝 연에선 ‘영원한 독도 선언’과 ‘만세’로 마무리지었다. 침략자의 종말이 어찌 되는가는 아래에 인용할 일본 시인의 작품 <神의 兵士)>에 의해서도 전망된다.
(전략) / 몇 번인가 죽고 / 몇 번인가 되살아나는 병사들이 / 앞으로도 대륙에, 바다에 / 몇 세기 고 줄을 지어 이어지는 것이다 / (영원히 받을 수 없는 보수는 / 무한한 담보이다!) // 1944년 5월 어느날 밤...... / 나는 한 병사의 죽음에 입회했다 / 그는 나무의 해먹에 몸을 누이고 / 고열(高熱) 에 허덕이면서 / 좀처럼 죽으려 하지 않았다 / 희푸른 기억의 화염에 싸여 / 어머니랑 누이랑 그 와 / 연인을 위해 끝없이 눈물을 흘려댔다. / 그와 나 사이엔 / 다시는 머물 수 없는 경계선이 있고 / 흔들리는 주야등(晝夜燈) 어두운 불빛 그늘에 / 죽음이 찾아와서 꼼짝않고 웅크려 있는 것이보였다 // 전쟁을 저주하면서 / 그는 죽어갔다.(하략)10)
3. <들어라 이 땅의 함성을
다시는 어떤 국치國恥도 용서하지 않는다> (홍윤숙 작)
시제가 2행 23행인 홍윤숙의 <들어라 이 땅의 함성을 / 다시는 어던 국치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전 3연 54행의 장시인데, 지면사정으로 서연(序聯)을 생략하고 2연부터 인용한다.
나는 기억한다 1933년 보통학교 1학년 조선어 시간에
소, 소나무, 소리도 낭랑하게 읽던 우리 국어 교과서를
하루아침에 눈뜨고 빼앗기던 그 슬픈 날을
치욕의 내선일체란 미명 아래
일본어를 국어라고 강압하며 잘타하던 통분의 세월을
센진, 센진(鮮人-賤人)이란 조선인 아닌 천민이 되어
우리 아름답던 젊은날을 피눈물로 젖게 하던 치욕의 굴레들을
10대의 사춘기를 몸뻬바지에 머리수건 동여매고
근로보국, 신사 참배, 방공훈련으로 날을 지새고
아버지와 아들들이 징용 징병 학도병으로
기약도 없이 끌려나기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내 가문의 뿌리인 성姓까지 말살하려고
창씨개명에 광분하고
짐승 같은 왜병들에게 고깃덩이 던져주듯
전국의 꽃 같은 처녀들을 줄줄이 끌어갔다
여자 정신대! 생살을 짖는 아픔, 그 아픔
이제 백발이 성성하여 너희 앞에 섰는데
너희는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느냐, 사람도 아닌 것들
그 와중에서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하여 날마다
쌀배급 석탄배급 소금배급까지, 명절에 한 번
생선 한 토막 고기 한 덩어리 배급받기 위하여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치욕을 견디었다
저희들 내지인(內地人-일본인)은 앉아서 마음대로 사먹는 것들을
마침내 어느날 구둣발로 쳐들어와 놋그릇 공출이란
폭력적 수탈로 조석으로 담아 먹던 밥그릇 국그릇 수저까지 약탈해 가고
조상 대대로 봉제사하던 제기까지 쓸어 갔다.
그 악몽 같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 무슨 철면피로 놓친 보물 아깝다고
다시 침탈의 칼날을 들고 일어나는가
저 아름답고 의연한 천년의 역사를 지닌 땅
독도를, 동해의 파수꾼 외로운 수비성守備城 우리의 혼을
오늘 한반도 삼천리 강토가 일어나 절규한다
비록 너희보다 작은 나라지만 작은 고추가 매운 것을 네가 모른다
꿈꾸지 마라 이 땅의 흙 한 줌 풀 한 포기인들
다시는 너희 발에 더럽히지 않으리니
매국노 이완용 송병준은 이제 없다
지난 세기 저 통한의 국치國恥 씻어내며 씻어내며
누만년 이 땅을 지켜나갈
독도는 살아서 펄펄 뛰는 우리의 혈관이다 심장이다 자존심이다
우리가 지킨다 7천만이 제 가슴 지키듯 우리가 지킨다
독도여! 아름답고 의연하고 영원하여라.
과거 36년 동안 일제가 자행한 만행과 그로 인한 학대가 수없이 나열됨으로써 어리석었던 전철(前轍)을 밟지 않도록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만행에서 여성과 관련된 ‘정신대’의 참상을 읊은 일본시인들의 작품을 한둘 인용한다.
이또오 케이이치(伊藤桂一)의 <한국의 여인들>을 앞세운다.
한국의 여인들, 아름답지 않아 / 중국의 북방 산서성(山西省)에 와서 / 병정들과 더불어 주둔지에 살았다 / 한국의 여인들 아름답지 않아도 / 약간은 교태 섞인 서툰 일본말을 지껄이더라 / 병정들 비적을 토벌하러 나갔으니 / 한적한 청루(靑樓)의 지붕에 올라 / 애처로운 한국의 투박한 노래를 부르더라 / 한국의 여인은 아름답지 않아도 / 그 소리를 들으면 나긋나긋하더라 / 병정들 오랜 주둔생활을 마치고 / 살아남은 자들 귀환하고자 / 오늘 이 쓸쓸한 부락을 떠나려 하니 / 부락은 일장기를 세우고 배응하거늘 / 한국의 여성들 부락의 변두리에 있어 / 서툰 일본말을 외치며 희고 보드라운 손을 서로 / 흔들어 보냈더라.11)
‘종군 위안부’를 노래한 이 시는 시인이 22세(1934년) 때 지은 작품으로, 멀리 조국을 등지고 전쟁터로 끌려나와 온갖 수모를 겪는 ‘한국의 여인’들의 처지를 노래한 시이다.
이러한 그들이 마침내 겪어야 히는 비극이 이시가와 이츠코(石川逸子)의 <소녀(少女>)에서 이렇게 읊어진다.
1. 치마 저고리를 입은 / 소녀 셋 / 빙긋이 웃으며 강가에서 멈춰선다 // 망향의 생각을 숨기고 / (빼앗기기 전날에 가족과 본 살구꽃이여) / 참으로 / 천진난만한 어린이로 보이지만 / 은근슬쩍 사모하던 사람에게도 허락지 않은 / 소중한 숨긴 데를 / ‘皇軍’의 이름으로 밤마다 농락 당하는 당신들이군요 (중략)
2. 그 고향으로 한사코 달리는 뱃머리에서 / 몸을 내던져 / 깊이 깊이 가라앉아 버린 소녀 - // 당 신의 이름은 모르고 / 단지 종군 위안부였다고 // 당신을 능욕한 우리나라 사내들은 / 대일본제국 의 사내들은 / 견장을 떼고 칼을 떼고 / 거침없이 일본의 거리와 마을 속을 휩쓸려 들어갔는데 / 지금쯤 전우회에서 / 그립게 군가를 불러 제킨다는데 // 아직 못 돌아온 당신 / 10대의 소녀인 채 당신은 / 지금 어느 바다 밑에서 / 영원한 슬픔의 꽃 피우고 있을는지 // 찾아내야지 / 찾아내야지 / 그 꽃을 / 핏빛의 그 꽃을 찾아내야지12)
그러고 보니, 이미 5년 전에 우리의 여류시인 문봉선이 발표한 산문시 <성 노예>가 떠올라 그 진실성이 입증되는 동시에, 남먼저 가슴에 담아온 민족애도 확인된다.
아름답던 산천 꽃봉오리들 당나귀에 실려 찔레눈꽃 무더기무더기로 핀 요동 들판을 달렸다. 김밥
밥․만두․햄버거를 사먹는 꿈을 구며 칙칙 폭폭 기차를 탔다. 마차군도 없는 꽃마차를 갈아탔다. 발가벗은 모래벌판으로 내던져졌다. 이때 바다는 시퍼렇게 껄떡거리며 달겨들었다. 흡사 배고픈 미 친 사냥개처럼 출렁였다. 그들은 천황의 이름이 새겨진 돌가루푸대에 흙을 담아던지듯 그렇게 담아 던졌다. 산 채로 제방을 쌓듯 바다귀퉁이 한 쪽만을 메꾸었다. 너희들은 천황의 이름으로 바다를 메꾸는 데 한 몫을 했다며, 가슴에 톱질한 선홍빛자국을 드러내보이며 개들은 성주처럼 웃어댔다. 본드로 반듯하게 붙인 깨진 견공들의 공예품처럼, 아직도 그들은 웃고만 서있다.13)
‘정신대(艇身隊)’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에는 비록 ‘독도’라는 시어는 들어 있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독도를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절대로 게을리할 수 없는 의무감임을 깨우쳐 준다.
4. <한글 가락이 파도치는 독도는 우리 땅> (유안진 작)
각 10행씩인 2연 20행으로 짜여진 유안진 시인의 <한글 가락이 파도치는 독도는 우리의 땅>은, ‘파도와 바람 소리’를 ‘한글 가락’과 결합시켜 ‘독도’가 우리 고유의 영토임을 강조하여, 이를 다시 탐내는 상대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여성적인 섬세한 감성으로 노래한 작품인 점에 특색이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大韓民國 삼천리반도의 막내 독도獨島
태평양 넓은 바다를 겁도 없이 달음질쳐 놀아
우리 독도가 뛰어노는 마당 태평양도 우리 동해
우리 독도 발자국 찍힌 그만큼 우리 바다
“동해믈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여기 늘 파도소리 바람소리도 애국가 곡조
신라 지증왕 때부터 독도는 우리 국토
세계 각국의 옛날 지도 역사 地圖 歷史가 증명하는 우리 땅
파도, 바람, 물새도 기역 니은 디귿 리을․․․로
한글노래 부르는 시인들의 섬 우리 독도는
대나무가 없는데 어찌써 다케시마라는가
어거지로 떼쓰고 우격다짐으로 오만 교활로
꾀 쓴다고 피와 혼이 바뀔 순 없느니
36년 지난 세월 잔인 무도했던 큰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하늘에 양심에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줄 알진저
물러나 들어보라 파도와 바람도 한글의 음정音程
우리 한글의 전래곡조 3~4조의 동요조이니
여기 바다도 우리 동해 독도는 물론 한국땅이라네.
시어는 평범하고 표현은 부드러워 보이나, 그 속에 담긴 이치는 아무도 반박할 틈새를 주지 않으니, 그 중 두세 가지만 지적하면, ‘세계 각국의 옛 지도’라는 물적 증거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표음문자인 ‘한글’이기에 제대로 적을 수 있는 ‘파도와 바람 소리’를 내는 예술적 품격과, ‘대나무가 없’는 섬의 ‘다케시마’ 명명의 허무맹랑성 등이 그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끄러운 줄’을 깨닫도록 압박하니,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진리는 저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시인들은 학생시인 윤동주가 여실히 보여 주었듯이 조국을 지키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거니, 이와는 반대로 일본인들은 남의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라, 좋은 대조가 된다. 예외적이긴 하나 그들 가운데도 스스로를 반성하는 이가 있었으니,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꼬(茨木のり子)인즉, 그녀의 시 <이웃나라 말의 숲>에 ‘윤동주’가 두 번이나 나오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전략) 대사전을 베개로 선잠을 자면 / “네 들어옴이 늦었다”라고 / 尹東柱가 조용히 힐책을 한다 / 정말 뒤늦었다 / 하지만 어떤 일이든 / 너무 늦었다고는 생각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 / 젊은 시인 尹東柱 / 1945년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옥사 / 그것이 당신들에겐 광복절 / 우리들에겐 降伏節 / 8월 15일을 거슬러올라 불과 반 년 전이었을 줄이야 / 아직 학생복을 입은 채로 / 순결만을 동결시킨 듯한 당신의 눈동자가 눈부십니다 //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 이렇게 노래하고 / 당시 감연히 한국시를 썼던 / 당신의 젊음이 눈부시고 그리고 애잔합니다 /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 달빛처럼 맑은 시편 몇 개를 / 서투른 발음으로 읽어 보지만 / 당신은 씽긋도 하지 않는다 / 옳고 그름도 없는 것 / 앞으로 / 어디쯤 더 갈 수 있을는지요 / 갈데까지 가
서 쓰러져 눕고 말고 싸리 들녘에14)
평설자가 졸고를 쓰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양심적인 시인을 제대로 평가하여, 정의를 실현시키는 우리의 동지로 삼고 싶어서이다. 이런 점에서도 독도는 분명 외롭지 않다.
5. <너 아름다워 이 땅이 온통 아름다우니> (신경림 작)
전 7연 17행인 신경림 시인의 <너 아름다워 이 땅이 온통 아름다우니>는,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은 분란이 동해에서 벌어지지 않는 한은, 우리의 독도가 이름다운 이치를 노래한 작품이니, 시인의 통찰과 뛰어난 표현력에 의해, 주권을 잃은 전철(前轍)을 밟지 읺아야 할 당위성을 노래한 데 큰 의의가 있다.
국토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 있어도
늘 우리들 가슴 한복판에 있는
높은 파도와 모진 바람에 맞서면서
영원한 그리움이고
안타까움이면서
하늘에 펄럭이는 깃발이고
산과 들을 내달리는 함성인
일상에 찌든 우리들 등줄기를 후려치는
맵고도 아름다운 채찍인
국토란 무엇인가
조국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너 평화로워 나라 두루 평화롭고
너 행복하여 우리들 모두 행복하고
너 아름다워 이 당이 온통 아름다운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꿈
첫연에 나오는 ‘멀리 떨어져 홀로 있어도’ ‘가슴 한복판에 있’다는 역설적 표현부터가 ‘독도’의 문제는 결코 가벼이 보아넘겨선 안 될 중차대한 역사적인 과제임을 시사해 주거니와, 그 이유를 ‘그리움’과 ‘안타까움’임을 말한 뒤, 그 의미야말로 ‘깃발’․‘함성’, 특히 ‘채찍’으로서, ‘국토’와 ‘독립’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기틀이 되어 주니, 독도와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누려야 전제조건이야말로 독도의 방위에 있음을 설파하고, 그러한 자각과 헌신이야말로 너와 나만이 아닌 공동 운명체 ‘우리’로서의 ‘사랑’과 ‘꿈’이라고 마무리지은 것이니, 표현은 쉽되 의미는 깊게 하는 민중적 시 창작의 진수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라 하겠다.
이런 평화와 행복과 아름다움을 간직하려면, 우리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침략자와 용감하게 맞서 나가야 한다. 일본의 우경화, 군국주의화 경향은 이제 그들의 자숙만을 감나무 아래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단계는 넘긴 것 같다. 원자탄의 세례를 받은 것이 고작 갑년인데도 편화헌법을 땜질하는 추세로 보아서는 ‘독도’ 찬탈 100주년이니, 언제 그 교훈을 헌 신짝처럼 내동댕이칠지 모른다. 게다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 청산함이 없이 언감생심 유엔의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노리는 수작은 방약무인이라 할 만하니, 요컨대 군사 대국화의 재판임을 알리는 징후가 짙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계제에, 일본 군국주의의 표상을 노래했던 일본 시인 기타가와 후유히꼬(北川冬彦)의 <鯨> 전문을 인용해야겠다.
巨大한 고래가 떠오르자 海峽은 즉시 괴멸되고 말았다
無辜한 海峽
아니, 아니. 바로 잡은 方向의 方向
惡은 벌써 巨大한 고래가 떠오른 데 있는 거다
海峽에의 追憶, 이것도 훌륭한 所業地
巨大하다는 것, 그것은 惡이다 惡일 뿐이다.15)
러시아 발틱함대를 대마해협에서 무찔러 독도를 빼앗아 동해를 차지하고도 부족하여, 서해와 남지나해를 침략한 후 뉴기니아 심지어는 하와이만까지 급습하여 전세계를 전쟁으로 휘몰아 넣은 그들의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거대한’ 야욕을, 비록 국토는 작고 인구도 많지않은 우리이긴 하나, 기필코 막아내어야 과거 36년 동안 겪었던 노예 처지를 모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독도를 지키고 민족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남녀의 차이와 남북의 구별이 잇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바, 우리는 민족적 총 역량을 결집해야 할 역사적인 고비에 서 있는 것이다!
나오는 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하찮아 보인다고 경계를 늦추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기 일쑤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늘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도둑 한 사람을 열 사람이 당해내기 어렵다”는 속담도 있으니, 하물며 상대방의 수가 이쪽보다 많을 경우에는 예방이 더욱 절실하다. 그런 예방을 확실하게 해내개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즉, 시집『내 사랑 독도』야말로 그 표제가 단적으로 말해 주듯이 독도에 대한 우리 시인들의 사랑의 결정체인 것이다.
가나다 순으로 엮인 이 시집은 앞표지 안쪽에 고은 시인의 즉흥시 <독도에서>가 실려, 독자와 첫 대면을 주선하고 있는 바[본문엔 12쪽에 재수록됨], 이 작품이 독자의 가슴에 와 닿는 것 또한 독도에 대한 사랑을 꾸밈없이 읊은 데 있는 것이다. 본고를 마무리하는 마당에 평설자도, 조국과 영욕을 함께 해 온 만감이 교차되는 심정을, 이름 부르는 이 시를 한번 큰 소리로 읊어 본다.
네 이름을 부르러 왔다
네 이름을 불러
세상 아득히
너의 천 년을 전하러 왔다
독도
동해독도
- 끝 -
----------------------------------------------------
註
1. 중앙일보, 2005. 5. 24, 28쪽
2. 한국시인협회편,『내 사랑 독도』, 문학세계사, 2005, 34~35쪽 (이하 본 시집 수록작품 인용은
같은 문헌에서 하되, 출전은 생략키로 함)
3. 타카다 도쿠에作, 서남현譯, <강제연행>,『나가사키의 노래, 강제징용』,1989, 도서출판다보, 34쪽
4. 同上, 14쪽
5. 同上, 44쪽
6. 同上, 48쪽
7. 9. 朴顯瑞著,『日本近代詩評說』, 고려원, 1989, 276쪽
8. 相澤史郞作, <安重根의 碑>, 金光林, <日本現代詩에 나타난 韓國․韓國人像>, 김태준編,『일
본문학에 나타난 한국 및 한국인상』, 동국대학출판부, 2004, 24쪽 引用)
9. 上揭,『日本近代詩評說』, 286쪽
10. 柳呈編譯,『일본 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평사, 1997, 86~87쪽
11. 同上, 48~49쪽
12. 金光林著,『日本現代詩散策』, 푸른사상, 2003, 211~213쪽
13. 문봉선 저,『독약을 막고 살 수 있다면』, 天山, 2000, 63쪽
14. 姜晶中譯, 日本女性詩人代表詩選, 文學世界社, 1988, 44~45쪽)
15. 上揭,『日本現代詩評說』, 93쪽
* 참고
비극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고한 우리 겨레를 세계역사상 초유인 원폭 희생자로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같은 시인의 <삼십구년째의 여름 長崎原爆忌日>은 이 비극을 읊은 것이다.
(전략) 일곱시 삼십분 // 폭심지(爆心地) 공원 한구석에선 / 쓸쓸히 / 한국인 피폭자들의 / 아침
추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 조국에서 사는 것마저 / 허락되지 않고 / 육친의 애달픔 정마저 끊기
운 채 / “강제연행” / 침략자의 손아귀에 / 낚아채여 // “혹사” / “학대” // 그 댓가로 / 원폭지옥
으로 내던져진 / 일만 여의 영혼이여 // 머리를 숙이기에는 너무도 가치없는 / 어리석은 자들의
기도를 / 제발 / 막아 / 주십시오 // 당신들의 슬픔 / 고통 / 미움 / 증오 // 우리의 마지막 세대
까지 전하여 / 같은 죄를 / 다시는 다시는 / 되풀이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하략)6)
. ) 타카다 도쿠에作, 서남현譯, <강제연행>,『나가사키의 노래, 강제징용』,1989, 도서출판다보, 48쪽
?) 柳呈編譯,『일본 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평사, 1997, 181쪽.
? 上揭,『日本現代詩評說』, 276쪽』
? 金光林, <日本現代詩에 나타난 韓國․韓國人像>, 김태준編,『일본문학에 나타난 한국 및 한국
인상』, 동국대학교출판부, 2004, 27쪽
* 참고
독도를 침범하는 데 혈안이 돼, 마침내 제 온몸을 망치고 만 지난날의 일본제국주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인즉, 이런 이치를 깨달아 스스로를 경계한 일본 시인이 있었으니, 기따가와 후유히꼬(北川冬彦)이다. 그는 <戰爭>에서 이렇게 노래한 것이었다.
義眼으로 다아아몬드를 박아준들,
무엇하랴, 이끼돋은 늑골에 훈장을 단들,
그것이 무슨 쇼용이랴.
순대를 늘어뜨린 거대한 머리통을 분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순대를 드리운 거대한 머리통은 분
쇄해야만 한다.
그 뼛가루를 손바닥 위에서 민들레처럼 불어 보내는 것은, 어느 날일까.1)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단가(短歌) 중에 <9月 9日>이 있다.
조선지도에 빨갛게 칠한 곳에
검은 먹물로
거멓게 먹칠하며 秋風소리 듣누나
가을 바람은 우리들 명치시대
젊은들의
위기를 슬퍼하느 얼굴 스치며 분다
閉鎖的 時代 염려되는 이 현상
어이하리오
가을에 접어들어 이 같은 생각 드네?)
?) 黃聖圭著,『石川啄木』, 中央大學出版部, 1996. 12쪽
황성규는 이 작품에 대해 아래와 같이 쓴 적이 있다.
타쿠보쿠는 日本의 韓日合邦에 否定的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에, 합방을 강행하는 當時의 日本
社會의 현상을 ‘時代閉塞의 現狀으로 표현하면서, “明治 靑年의 危機”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팽창주의적 부국강병 정책은 韓國을 植民地化함으로써, 대륙으로 그 侵略의 마수
를 뻗치리라고 하는 것을 예측한 타쿠보쿠는, 이러한 時代的 상황을 “明治靑年의 現狀”으
로 표혐하면서 “明治 靑年의 危機”라고 말한 것으로 생상된다.
日本의 팽창주의적 부국강병 정책은 韓國을 植民地化함으로써, 대륙으로 그 侵略의 마
수를 뻗치리라고 하는 것을 예측한 타쿠보쿠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明治靑年의 위기로 생각하여 노래한 短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同上, 12쪽
<끝없는 토론 뒤> (이시카와타투보쿠 작) // 김희보편저『일본 名詩選 』, 종로서적
종로서적출판주식회사, 1985, 51쪽
우리들 또한 읽고 한편으론 토론 벌이는 일,
그래서 우리의 눈동자 빛나는 것,
50년 전 러시아 젊은이들만 못하지 않아.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끈 쥔 주먹 탁자 치고,
“브 나로드!” 외치고 선 듯 나서는 자 없다.
우리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 무엇인지 알고,
또한 민중들 요구하는 바 무엇인지 안다.
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알아,
정작 50년 전 러시아 젊은이들보다 더 알고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끈 쥔 주먹 탁자 치고,
“브 나로드!” 외치고 선뜻 나서는 자 없다.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젊은이들,
늘 세상에 새로운 것 만들어내는 젊은이들.
우리는 노인들 먼저 죽어, 마침내 우리가 승리한다는 것 안다.
보라, 우리의 눈 빛남을, 또한 우리 토론 결렬함을
그래도, 누구 하나, 불끈 쥔 주먹 타자 치고,
“브 나로드!”라 외치고 나서는 자 없다.
아아, 촛불은 이미 세 번이나 갈았고,
물주전자엔 조그만 날벌레 주검 떠있고,
젊은 여성들 열성 변함 없건만, ,
그 눈엔 끝없는 토론 뒤의 피곤함 엿보인다.
그래도, 아직 누구 하나, 불끈 쥔 주먹 탁자 치며,
“브 나로드!” 외치고 나서는 자 없다.?) 拙譯!
) 104쪽․105쪽) 황성규역 참조 *참조: 김희보 편저,『일본 名詩選』, 종로서적, 1985, 51쪽
思想家로서의 타쿠보쿠는 當時의 日本 帝國主義者들의 政策에 否定的인 見解를 나타내는 詩와
短歌, 그리고 評論을 남겼을 뿐 아니라, 祖國과 强權으로서의 國家權力을 분리하여, 强權으로서의
國家權力을 敵對視하였다. 그리고, 日本의 韓日合邦은 韓國에게도/ 일본에게도 불행한 結果를 招
來할 것이라고 豫測하여 韓日合邦을 否定的으로 본, 時代를 앞서간 先覺者인 면, 또한 우리는 기
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이 타쿠보쿠 死後 100年 가까이 되어 가는 오늘날의 日本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타
쿠보쿠의 短歌를 詩를 즐겨 읽고 있는 理由가 될 것이다. 그리고, 또 日本의 固有 定型詩의 일종인
短歌의 形式에 따라 쓰여진 그의 노래는 다른 어던 詩人의 詩보다도 日本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 黃聖圭著,『石川啄木入門』, 中央大學校出版部, 1996, 144쪽․146쪽
韓國에서도 1985年代以來 每年처럼 1,2편 以上 타쿠보쿠에 관한 硏究論文이 발표되고 있다. 그리
고, 타쿠부쿠 硏究論文뿐만 아니라,『永遠한 世界의 名詩』(成春福編, 翰林出版社, 1968)에 카쿠보쿠
의 短歌 5首가,『石川啄木歌集』(吳英珍譯, 散文社, 1976)이 紹介된 것을 비롯하여, 끊임없이 타쿠보
쿠의 詩와 短歌가 紹介되고 있는 것을 자주 접할 수가 있다.
이렇게 타쿠보쿠의 短歌가 韓國에서 紹介되고 있는 理由는 타쿠보쿠의 短歌와 詩를 통해서 타쿠
보쿠의 情緖가 韓國人에게도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그리고, 타쿠보쿠의 노래와 詩에서 韓國人이 보자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다음
과 같이 생각된다. 韓國에는 오랜/ 옛날부터 時調라고 하는 定型詩가 있다. 이 時調는 總43字로 이
루어졌는데, 基本 音數律은 3音과 4音으로 이루어져 있다. 3音과 4音에 若干의 加減이 이루어져 部
分的으로는 4音과 5音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여기에서 5音과 7音을 基本으로 하는 短歌와의 類似
性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고 筆者는 個人的으로 생각하며, 이러한 理由에서 타쿠부쿠의 短歌가 韓國
人에게 담다른 親密感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 黃聖圭著,『石川啄木入門』, 中央大學校出版部, 1996, 146쪽․148쪽
) 유 정 편역『일본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편사, 1997
<高麗의 꽃> 무로오 사이세이(室生犀星作)
하얀 고려의 香盒 하나
그 밖엔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다.
지금은 입춘 가까운 때라
나른한 햇살이 장지 밖을 흐르고 있다.
그 장지 밖에
쇠그물로 된 긴 새장이 걸렸는데
한가한 새가 횃대를 두드리고 이TRek.
옛 고려사람은 쓸쓸하다.
옛날 광택을 띤 이런 향합을 때때로 만들어서는
제 마음을 멀리 떠나보내고 바라보았던 모양이다.
마치 대합조개처럼 한가하게 살며
봄의 공기 속에 긴장된 형상을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이름모를 고려사람 하나가
언제나 웅크리고 마음 조용히 바라본다.
이 고려는 매화 한점 속에 가라앉아
지금 한 치 정도인데 책상 위 가득히 펼쳐져 있는
옛 고려사람의 위엄은 쩌렁쩌렁 가슴을 울려오는 것이다.?)
) 유 정 편역『일본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편사, 1997, 69쪽
<범고래 기와> (무로오 사이세이(室生犀星作)
조선기와라는 범고래 한 마리를 사다가
정원의 푸른 이끼 위에 놓았다
범고래는 머리를 먼 하늘로 향하고
때로는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거무스레한 비늘을 곤두세우고 포효하고 있다
용맹스럽게 끊임없이 울부짖고 있다
옛날엔 왕성(王城) 지붕 위에서
달이 지는 서녘의 별을 향해 울부짖던 범고래는
밤마다 우리 집 뜰 이기 위에 앉아
쓸쓸히 저물어가는 서고(書庫)를 향해
창망한 풍경을 가다듬어 다스리고 있다?)
) 유 정 편역『일본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편사, 1997, 69쪽
<高麗> (타카하시 신끼치(高橋新吉作)
죽음은 흐르던 구름이 잠시 뭉쳐 있는 것 같은 걸까
삶은 소리없이 재발리 달려가는 구름을 닮았을까
고려 서울의 변두리, 검은 돼지를 보았다
창경원 너구리는, 눈 밑에 빨간 파를 흘리고 있었다.
학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산은 밤 속에 잠겨 있었다.?)
) 유 정 편역『일본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편사, 1997, 153쪽
<비 내리는 시나가와(品川)역> (나까노 시게하루中野重治作)
신(辛)이여 안녕
김(金)이여 안녕
너희는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에서 기차에 오른다
이(李)여 안녕
또 한 사람의 이(李)여 안녕
너희는 너희 부모의 나라로 돌아간다
너희 나라의 강물은 추운 겨울에 얼고
너희 반역하는 마음은 이별의 한순간에 언다
바다는 석양빛 속 울음소리 드높이고
비둘기는 비에 젖어 수염 안경 새우등의 그를 떠올린다
내리퍼붓는 빗속에서 녹색 씨그널은 켜지고
내리퍼붓는 빗속에서 너희 눈동자 날카롭다
비는 길 위를 흐르고 어두운 바다 위에 꽂힌다
비는 너희 뜨거운 뺨 위에 스러진다
너희 검은 그림자 개찰구를 나가고
너희 하얀 옷자락 플랫폼의 어둠에 펄럭인다
씨그널은 색이 바뀌고
너희는 차에 오른다
너희는 떠난다
너희는 사라진다
안녕 신
안녕 김
안녕 이
안녕 여자인 이
가서 그 딱딱하고 두껍고 미끌거리는 얼음을 두들겨 깨라
오랫동안 갇혀 있던 물을 풀어 흐르게 하라
일본 프롤레타리아트의 뒷방패 앞방패
안녕
복수의 환희에 욺녀 웃는 날까지?) *李北鳴 일행 송별시
) 유 정 편역『일본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편사, 1997, 145~147쪽
<大軍叱咤> (기따가와 후유히고北川冬彦作)
장군의 가랑이느 뻗쳤다. 군도(軍刀(처럼.
털북숭이 장강이에는 꽃 같은 중국의 매음부가 매달려 있다.
황진(黃塵)에 더러워진 기밀비(機密費).?)
) 유 정 편역『일본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편사, 1997, 181쪽
* <전쟁>도 같은 쪽수에 있음
<丘上吟> - 부여 迎月殿祉에서 (미요시 타쯔지三好達治作)
보름달 기다려
그 옛날 백제왕이
강물 보며 산을 향해
잔치 벌이신 전각 이름은
이 언덕 위에 남았는데
가을이 와 비 뿌리고
메밀곷 바야흐로 새하얀
밭 가운데 낡은 기왓조각을
줍느라 서성이다
함초롬히 옷소매 적시엇구나?)
) 유 정 편역『일본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편사, 1997, 128쪽
<조선> (마루야마 카오루丸山薰作)
언제부턴가, 아가시는 달리고 있었다. 아가씨의 뒤를 요괴가 바싹 쫓고 있었다. 그녀는 도망치면서
머리빗을 뽑아 내던졌다. 빗은 요괴와의 사이에 산마루처럼 우뚝 솟았다. 요괴는 그 산 그늘에 가
렸다. 그 사이에 아가시는 멀리 달아났다.
(중략)
그 어느 해 가장 불행한 순간에, 아가씨는 마지막 부분을 가린 엷은 헝겊 조각을 내던지고, 슬픔에 겨워엎드렸다. 헝겊은 펄럭펄럭 바람에 나부껴, 마침 가까이에 있던 갯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물이 되었다. 기슭은 물이 넘쳐, 방죽을 무너뜨리고, 무시무시한 홍수가 되어 들판을 덮었다. 배추밭을 묻었다. 소와 말을 묻고, 유교(儒敎)의 곡성(哭聲)이 서린 언덕 기슭 봉긋한 봉분마저 묻어버렸다. 무수한 촌락이 물위에 떠 흐르고, 초가지붕 위에 흔들어대는 이승에 대한 고별의 손길을 가득 싣고, 뉘엿뉘엿 소용돌이에 휘말려 바다 쪽으로 흘러내려갔다.?)
) 유 정 편역『일본근대 대표시선』, 창작과비편사, 1997, 236~237쪽
이 때 적의 구축함은 ‘스베뜨로나호(號)’와 헤어져, 단독 서북방으로 달아나려 했으므로, ‘니따까
마루(新는高丸)’ 때마침 다가온 아 구축함 ‘무라구모마루(叢雲丸)’와 함께, 즉시 그 추적으로 옮겼고,
‘오또와마루(音羽丸)’는 여전히 ‘스베뜨로나호’에게 다가가, 드디어 1000미터에 접극하자 더욱 맹렬한
포격을 가했다. 적은 이미 전투능력을 잃은 듯, 포화는 거의 멎어, 그저 부질없이 아군의 표격에 내
맡긴 채 있었다. 함상에 부서지는 아군의 대소 포탄은, 빗발처럼, 우박처럼 선체를 파괴하고, 갑판을
태워 승함자들은 더욱 많이 사상되어, 살점이 튀고, 피가 흘러, 맹렬 화력 군함을 덮어, 그 광경 처
절의 극을 다하였다. 그래도 적은 여진히 완강해 항복기를 내걸지 않고 군함과 운명을 함께 할 결심
으로 있었다. 적의 함장 셴 대령은 최후의 탄환 한 발을 마저 발사하자, 이젠 자신의 할 일은 끝냈 냈노라며, 승함자 구제의 준비를 하는 한편, 군함의 폭발 침몰을 명하였다. 그러나 이때 이미 침수가
화약고를 채워 폭발화약을 얻을 수 없자, 부득이 킹그스턴을 개방해 침몰을 서둘렀다. 이런 사이에
도 아군의 포탄 명중 더욱 심하여, 함장․부장 함께 전사하고, 기타 장졸의 사망도 헤아릴 수가 없 어, 누적된 시체 불에 타, 부상자의 신음 창자를 끊을 따름이어서, 드디어 많은 승함자가 스스로 몸
을 바다속으로 내던지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0시 50분경, 군함은 침수로 인해 점차 기울어 침목
하려 수직이 되었으므로, ‘오또와마루’는 사격을 중지, 적병의 구제를 때마침 나타난 가장순양함 ‘아
메리카마루’에 맡기곤, 남방에 나타난 매연을 쫓아 급히 항행했다. 그리하여 용감한 ‘스베뜨로나호’는
11시 지나 마침내 조선 죽변만(竹邊灣) 동방 약 15해리(海里) 지점에 침몰, 승함자 460명 중, 생존자
약 300명은 ‘아메리카마루(丸)’에 구제되었다.
그리고, 앞서 ‘스베뜨로나호’와 떨어져, 단독 서쪽으로 달아난 구축함은 ‘븨스뜨릐호’였는데, 아군
‘니따가마루’ 및 ‘무라구모마루’에 추격당하자, 도저히 탈출 가능성이 없음을 자인, 드디어 조선 죽변
만(竹邊灣)의 북방 수 해리 해안에 다다라, 스스로 해안에 몸을 부딛쳐 파괴하고, 그 승함자는 모두
뭍으로 달아났으나, 이윽고 아군 망루원(望樓員)에게 항복했다.1)
* 水野廣德著,『이 일전(此一戰)』, 博文館, 1911, (木村毅編,『明治戰爭文學集』, 筑摩書房, 1983,
166, 再引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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