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平和의 길 實踐한 玄基榮 小說의 歷史的 意義
ㅡ 小說集 『아스팔트』의 ‘4·3’ 關聯 連作
新毫(본명 신규호) - 문학평론가
들어가는 말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아버지」로 등단한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이, 첫 작품집『順伊 삼촌』을 낸 지 7년 만에 소설집『아스팔트』를 상재하면서, 그 <후기>에 ‘기교주의 아류의 십 년 전 작품까지 말석에 실’었음을 털어놓은 것으로 보아, 열두 편의 수록 작품 중 그가 가장 애정을 기울여 창작한 작품은, 아마도 앞쪽에 실릴 세 편의 ‘제주 4·3 사건’ 관련 연작이라고 여겨진다.
그 중에서도「아스팔트」는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분량이 가장 긴 점에서 단연 으뜸일 성싶고,「길」은 표제인 ‘아스팔트’가 포함된 더 넓은 범주인 점에서 중요시되며, 「잃어버린 시절」은 작품집의 벽두를 장식하고 있어 역시 주목을 끈다.
그러므로 졸고는, 맨 앞에 실린「잃어버린 시절」을 통해 ‘제주 4·3 사건’이 걸어온 길을 간략히 살펴본 다음, 같은 ‘길’을 다룬 나머지 두 작품을 일반 → 특수, 보편 → 구체의 이치를 따라 서술 차례를 정하여 ‘길’의 의미를 밝힘으로써, 전쟁에 버금가는 격동기의 체험을 살려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실천해 온 현기영 소설 문학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해 보겠다.
1. 逆說이냐, 不條理냐 ㅡ 「잃어버린 시절」
1983년『문예중앙』에 발표된 단편소설 「잃어버린 시절」은, 일제 말기에 제주 광연리에서 태어난 ‘종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제주 주둔 일본군의 발악상과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4·3 서건’의 실상을 드러내보인 작품이다.
온몸이 피칠갑인데다가 한땐 숨도 멎은 주인공의 탄생부터가 그의 앞날이 순탄치 않은 숱한 고난이 시사되고 있거니와. 종수는 실제로 물에 빠지거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등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가정 바깥의 사건으로 눈을 돌리면, 일본 관동군 7만명이 해변을 따라 참호를 파기 시작하여, 젊은이들은 군대나 징용으로 끌려가, 어른들이 굴 파는 작업에 강제 동원된 상황이 증언된다. 가정이 비교적 여유 있던 관계로 아버지는 일본군에게 집 일부를 강점당해 불편하게 살지만, 도리어 그들과 ‘똥창을 맞대고 살’았다 하여 친일파로 지목되는 역설을 낳는다.
일본군이 ‘총력전으로 미영(米英) 귀축(鬼畜)을 물리치자!’고 외친 것이 무위로 끝나, 한 달 후 해방이 되자, 그들은 많은 무기를 산에다 숨겨둔 채 철수했고, 뒤따라 진주해온 미군은 ‘민주주의 사도답게 너그러이’ 좌우익 단체를 함께 합법화하였으나, 이듬해 3·1절 기념식에서 좌익이 소요를 일으키자 좌익은 불법화된다.
그 얼마 전에 이미 마을에선 석호네 큰형을 위시한 일부 젊은이들이 횃불을 들고 ‘왓샤, 왓샤’를 외치며 마을길을 도는 바람에 깊은 생각 없이 그 뒤를 따른 종수는, 친일파로 지목되어 구장직을 빼앗긴 아버지의 비위를 거슬려 모진 매를 맞게 된다.
“요놈의 자석, 죽어라, 죽어! 번번이 죽는 걸 살려노니까 이젠 집안 망칠 궁리여, 어? 저 젊은것들이 뭣하는 중이나 알고 쫓아댕기는 거냐, 엉? 그것이 바로 불장난이여. 즈이 집 패가망신할 불장난이여. 아무리 주장이 옳다고 해도 법 가진 놈한티 대들어 무사할 줄 아냐? 법 가진 놈이 이기는거여! 요너러 자석, 밖에 못 나가게 아주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앉혀놓고 먹여야겠다. 요놈!”
그런데 어느 날 ‘왓샤’하던 청년들을 잡으러 외도지서 순경들이 나타나자, 쫓긴 사람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무기를 파내어 ‘4·3 사건’을 일으킨다. 14개 지서가 습격을 받자 미군 스리쿼터가 병력을 실어 나르게 되어, 중산간 지대 주민들은 해변 사람과 산사람 들 틈새에 끼여 이중의 고통을 당하게 되어, 중산간도로가 운명을 갈라놓는 경계선이 되는 바, 이는 구 소련의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숄로호프의『고요한 돈강』의 ‘강’을 연상케 한다. 정세가 바뀔 때마다 밀고 밀리는 급변의 현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민들이 겪는 비극은 숄로호프가 그 장편보다 먼저 쓴 소설집 『돈 지방 이야기』의 수난상을 방불케 한다.
개인 차원의 좌우 대립은 그들과 맺어진 친인척과 더불어 확대 재생산되어 섬 전체로 퍼져가니, 이를테면 경찰에 투신한 종수 외삼촌의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가슴팍에 광택나게 잘 닦인 놋단추들이 줄줄이 달린 검정 제복이며, 쇠테를 넣어 먼지도 미끄러지게 팽팽한 모자’를 쓰고 나타난 외산촌이 번쩍 안아올리자, 종수가 얼른 그 모자를 벗겨 제 머리에 얹는 것을 본 할머니가 “종수야, 냉큼 그 모자 벗어라!”고 앙칼진 목소리를 지르는 것도, 그런 확대 재생산에 따를 화를 미리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읍으로 이사하라고 권한 그 외삼촌의 출현은 산사람들한테 경찰가족이라는 의심을 받게 하나, 토벌대에겐 양민이라는 근거가 되어주는 이중적인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사를 거절했던 아버지가 방목장이 작전지구가 되는 바람에 열다섯 마리나 소를 잃게 되자, 난세에 손자 하나로는 안심이 안 된다는 할머니의 뜻을 따라, 어머니의 불평엔 아랑곳없이 남은 소 두 마리를 판 돈으로 불시에 작은각시를 얻어 건너마을에 딴살림을 차림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때마침 구장 노릇 하기가 무서워진 문씨가 피난을 가버리자, 새 구장을 위촉하러 온 경찰을 건너마을로 안내한 종수의 못마땅한 심리가 뜻밖에도 엄청난 결과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수는 작은집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방망이질치듯 몹시 뛰놀았다. 저 집 문안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지! 아버지의 엉큼하고 뻔뻔한 낯짝을 보기가 싫었다. 작은어멍이라는 그 여자는 더더욱 싫었다. 나는 애비 없는 새끼야! 종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집 앞에 이르자 종수는 퉁명스럽게 “이 집이우다” 하고 내뱉고는 휭하니 오던 길로 달려나왔다. 긴 골목을 단숨에 뛰어 막 큰길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뒤에서 종소리가 잇달아 터졌다.
소장수와 노름을 하다가 관에서 노름판을 덮치러 온 줄 알고 달아나므로 경찰이 총을 촌 것인데, 소장수 한 사람은 그 총에 맞아 죽었고, 아버지는 간신히 몸은 피했으나 그 뒤로 영영 돌아오질 않았다. 그러니 이 대목의 ‘길’은 ‘애비 없는 새끼’란 푸념대로 운명이 결정지워진 시발점을 말해준다.
종수는 할머니와도 이별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한라산을 삥 두른 백여 군데 중산간 부락들이 ‘살광(殺光) · 소광(燒光) · 창광(倉光)’ 등 이른바 ‘삼광(三光) 작전’으로 초토화될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위패를 안은 채 ‘종수 아방도 올지 모르니...’하곤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둘이서 피난을 간 종수 모자는 경찰에 연행되어 입산가족을 의심받게 되나, 종수 외삼촌이 주고 간 군복차림 사진으로 위기를 극복, 장성 축벽에 동원되는데, 이렇게 축성으로 마무리되는 사건은 의미심장하니, 그것은 싸르트르의「벽(壁)」이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벽’은 인간의 대립 · 갈등의 상징으로, 성의 축벽은 그런 디립 · 갈등의 최후 단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족간의 틈새가 벌어진 거리감과 마을 사람들의 갈등이, 경찰 토벌대와의 큰 충돌로 번진 극단적인 집단 대립상을 그려 역사적 사실을 증언한「잃어버린 시절」은, 역설이냐, 부조리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비교적 여유가 있고 법에 저항하면 파멸할 줄도 알았던 종수 가족이 이산(아마도 사별 결손 가능성이 큼)되는 것이나, 민족적으로는 36년간의 이민족 지배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겨레가 감격을 누려야 할 해방공간에서 격돌하는가 하면, 통일을 지향했어야 할 겨레로서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해 미구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올 단선(單選)을 강행한 점이나, 국제적으로 ‘민주주의의 사도’인 미군에 의해 사태가 미연 방지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돼 막대한 인적 희생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겉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진리의 일면을 드러내는 역설인지, 아니면 당초부터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삶의 본디 모양이라는 부조리를 보여준 것인지, 독자로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중요한 작품이다.
현기영은 지난 5월 24일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의 한 발제문 <기억 투쟁으로서의 문학>에서, 4·3 사건은 1년 전에 ‘진정한 해방을 위하여 미 · 소의 철군을 요구한 민중 집회에 미군정 경찰이 발포함으로써 6 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한’ 1947년 3·1 사건까지 포함되는 동시에, 4·3 이후의 ‘양민 학살을 자행한 군경 토벌대의 진압 과정까지 포함’된다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섬을 불태우는 초토화 작전에서 섬주민의 1/9에 해당하는 최소 3만명이 학살당하고 130여 개 마을이 소각된 그 사건을 생각하면, 나에게 그것은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이은 세 번쩨 원폭 투하처럼 느껴진다. 4·3은 미국의 세계전략 구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동족이 동족을 학살한 그 사건에서, 미국은 손에 피가 묻지 않았가고 해서 무죄인가? 현장에서 미군복, 미군화에 미제 총을 쥔 조선 토종 병사들만 보이고 미군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무죄인 것은 아니다.1)
이 발언은「잃어버린 시절」의 작가 현기영 자신이 역설인지 부조리인지 가늠할 수 없던 잔혹한 상황하에서, 일찍부터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실천해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2. 偶然이냐, 必然이냐 ㅡ 「길」
1981년『실천문학』제2집에 발표된 단편소설「길」은, 앞에서 다룬 ‘종수’의 ‘아버지’보다도 거의 살해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아버지를 다룬 작품인 점에서, ‘길’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만남’이 우연인가, 필연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게 해 주는 작품이다. 저지리에 살던 화자의 아버지가 애엄리에 있는 밭을 갈러 갔다가, 박춘보씨에게 끌려가던 외도리 강훈장 집 손주로부터 “내가 아무 날 아무 시에 죽었단 말 좀 알려줍서. 꼭 부탁햅수다.”는 당부를 받는 바람에, 함께 연행되어 간 것을 종수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거니와, 그 후 10 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에서 이루어진 이 만남은 바흐찐의 말처럼, 그저 우연한 사건처럼 보인다. 그는 아래와 같이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만남은, 소설의 경우, 흔히 ‘길’에서 일어난다. ‘길’이야말로, 우연의 만남을 ‘독점’하고 있는 장(場) 이다. 길(한길)에는 극히 다종다양한 인간들 ㅡ 모든 계층, 모든 신분, 모든 종파, 모든 국적, 모든 연령의 인간들 ㅡ 의 길이, 같은 때에 같은 곳에서 교차된다.2)
그러나 지금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서, 설사 아버지가 박춘보씨를 만난 것은 우연이라 하더라도, 연행되어 간 일마저 전적으로 우연이겠는가 하는 문제에 부닥친다. 작품공간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박춘보씨는 왜 아버지를 끌고 갔던가? 마을 싸움의 원한 때문에? 아니면 아버지에게 폭도의 혐의가 있었나? 아니다. 차라리 그런 이유 때문에 끌고 갔더라면 내 질문에 대답하는 박씨의 입장은 그 나름대로 떳떳할 것이고 따라서 아버지가 죽은 곳을 알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때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검정 두루마기 입은 그 사내가 아무 날 아무 시에 자
기가 죽었노라고 전해 달라는 바로 그 말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은 결정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
쩌다 공교롭게도 사사로운 원한에 의한 어느 처형사건의 증인이 되어버린 것이고, 박씨는 나중에
말썽날지 모르는 증인을 없애기 위해 아버지를 끌고 간 것이다.
‘공교롭게도’는 우연 쪽에 가까우나, 박씨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을 없애기 위해’는 심리면에서 그럴 수도 있어 개연성(蓋然性)은 마련되었다고 본다. 더군다나 전시에 있어서는, 황석영이 “드디어 작전에 나가게 되어서는 더욱 생생하게 죽음과 대면했지만 일번 도로 주변에서도 거의 날마다 우연과 행운의 연속이었다.”3)고 월남 파병 시절을 회고하고 있는 것처럼, 전쟁이나 소요 사태에서는 우연이 속출하는 것인지도 모르니, 우연을 평화로운 시대에 쓰이는 잣대로 재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용문에 나온 ‘내 질문에 대답하는’으로 보아, 박춘보씨와 화자(나)가 만났음이 밝혀지거니와, 이 두 사람은 담임교사와 학생 아버지의 관계로 사건 발생 20여 년 만에 만났으니, 우리 속담이나 한자성어를 빌리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원수’나 ‘오월동주(吳越同舟)’격일 텐데도, 역설적으로 화자는 박씨의 아들인 제자에게 지극한 정성을 기울여 미납 수업료를 대납해 주는 가 하면, 학업 성적도 크게 끌어올려 일류대학에 진학시킬 가능성을 열어 놓은 형편이다.
옛날에는 두루 알다시피, ‘사주팔자(四柱八字)’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결정론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사주팔자론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폭 수정을 한다면, 기왕에 있어온 ‘시간(時間)’에다가 그와 짝이 되는 ‘공간(空間)’을 마련해 준 뒤, 근래에 급속도로 발전해온 ‘게놈’과 관련되는 가문의 ‘전통(傳統)’을 첨가한 뒤, 마지막으로 실존주의 문학관에서도 강조돠고 있는 배운 교육의 실천이라 할 ‘지행(知行)’의 기둥(柱)을 세우면, 어떤 사건이 우연인지 여부를 가리는 데 한결 도움이 될 것 같다.
위에서 든 네 기둥 중 마지막과 관련이 있는 실존주의 작품 예를 하나 들면 사르트르의 「벽」이니, 내용인즉 저항투쟁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한 인물이 주모자의 도피처를 대라는 끈질긴 추궁에 지쳐 아무렇게나 ‘공동묘지’라고 답한 것이 현실로 밝혀져 석방되니, 겉으로는 단순한 우연인 성싶은 것이, 알고 보니 능히 그럴 만도 하다는 개연성도 아울러 보여 주는 것이다. 현대 철학이나 논리학에서도 우연 또는 필연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대해 아직도 확고한 기준이 없고, 심지어는 필연인데도 아직 알 수가 없다는 견해도 있어, 어느 한쪽으로 속단해 버리는 것은 현명치 않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이 작품의 분석으로 되돌아오면, 사망자가 자그마치 3만 명이 넘는 끔찍한 사건이었으므로, 길에서 만나는 사람끼리도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마구 연행하여 살생했음직하니, 이 작품의 구성을 우연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그러한 현실이 제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작품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 몫의 죽음이 아니라 남의 죽음에 덤으로 얹혀진 무의미한 죽음이었다. 사람 목숨이 그렇게 우연히 처리되다니! 일순 노여움이 불끈 치미는 것을 간신히 눌러 진정시켰다. 아서라. 휘진이 아버지를 미워해서는 안돼. 평상시 안목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것이 난세의 논리가 아닌가. 흔히 시국 탓이라고들 말하지만, 가해자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발광케 만든 한 시대였다.
여기서 ‘필연적인 죽음이 아니었다’나 ‘우연히 처리되다’는 평화로운 정상적인 시대가 아닌 비상시국의 포악성을 보여 준 것이며, 그러기에 그런 ‘난세’ 곧 ‘개인을 발광케 하는 시대’를 미워하는 작가의 정의감을 읽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문학이 당면한 과제를 추출해 보면, 해방 60년이 되도록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7천만 겨레로서, 소극적으로는 이런 끔찍한 동족상잔을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은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는 민족의 용서와 화해에 더욱 큰 발걸음을 떼어 놓아야 할 것이니,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이 땅에서 전쟁만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나, 정부에서 남북대화의 복원에 노력하는 일 등이 모두 이와 맥락을 함께 하는 것으로, 이 작품의 가치는 바로 이런 당면 과제를 이미 20여 년 전에 남보다 앞서 강조한 데 있다고 본다. 아래와 같은 작품평도 이런 점을 높이 산 것으로 헤아려진다.
한편 1980년대의 작품인「길」(1981)과「아스팔트」(1984)는 역시 사태 당시의 회상이 몸통이 되고 있으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현재이고 현재의 화해이며, 두 작품 모 두 가해자의 뉘우침이라는 모티프가 나타난다는 점이 주목된다.「길」의 일인칭 화자는 노
인을 만나러 가는데 이미 노인은 임종을 맞이한 뒤이다. 사태 당시 일인칭 화자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박춘보 노인인 바, 노인에게 직접 진실을 듣는다는 것은 여기서 그 자체도 화
해의 등가물이 된다.4)
이렇게 비록 제대로의 고백이나 참회는 듣지 못한 대로, 겉으로는 우연성이 많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개인이 미쳐 버린 한 시대를 그렸을 뿐만 아니라, 그런 고통을 시급히 치유할 용서와 화해라는 값진 선물을 받을 가능성을 독자에게 안겨준 값진 작품이다.
3. 和解냐, 凝固냐 ㅡ 「아스팔트」
1984년 신작소설집『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에 발표된「아스팔트」는, 읍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창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인데, 그가 한밤중에 시오리 밖 향리 새밋드르에서 날아든 강영조씨의 유언을 들으러 와 달라는 전갈을 받고, 공항에서 중산간지대로 뚫린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면서, 포장이 안 됐던 30여 년 전의 끔찍한 사건을 회상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아스팔트 위로 발을 옮겨놓는다. 이왕 내친 걸음 할 수 없다. 걸어서라도 가야지. 이렇게 맘을
다잡아먹은 창주는 아예 아스팔트 복판으로 나와 걸음을 빨리 떼놓기 시작한다. 그런데 걸으면서
어쩐지 구름밭을 디디는 것 같은 야릇한 비현실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웬일일까? 자신이 오
밤중에 눈길 위에 끌려나와 걷고 있는 몽유병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드는 것이다. 내가 진짜
길이 아닌 꿈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 타면 단 십분 걸리는 곳을 이렇게 걸어가게 될 줄이
야.
이렇게 마음이 어수선한 것은, 강씨의 유언을 듣게 된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과거가 그만큼 처참했음이 언외에 깔려 있는 것이다. 작품은 우선 비포장이던 고향길에 대한 추억이 해방 전후에 있었던 일들과 더불어 살아나면서, 일제에게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내내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부재가 서술되는데, 현기영의 소설은 대부분 우리 민족의 불행이 일제의 침략과 결부되어 제시되는 것이 한 특징인데, 이른바 친일문학과는 천양지판인 전형적 민족주의 문학임을 말해 주어, 해방 60주년인 데도 아직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역사 왜곡이나 가당찮은 독도의 영유권 생떼를 쓰는 일본 정부의 처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로서는 몹시 값진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길에 먼지구름 일으키며 미군 지프차, 스리쿼터가 무섭게 질주했’고, ‘길 가던 젊은 여선생이 지프에 채여 가기도 했’던 해방 공간이 회상됨으로써, 아직도 주권을 제대로 되찾지 못한 당대인의 슬픔만이 아니라 ‘4·3 사태’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이 바람직스럽지만은 않았음도 시사해 준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36년 전, 온 섬이 대난리를 만나 북새통일 때 이 시오리 길을 사이에 두고 읍에 순경들과 마을
남정네들 사이에 한때 야릇한 숨바꼭질이 벌어졌었다. 마을 앞 야트막한 도새기 동산에서 홀연 울려퍼지는 나팔소리와 함께 평소에 없던 소나무 한 그루가 불쑥 솟아오르면 마을 남정네들이 불 깐 돼지 튀어나듯 산 쪽으로 냅다 달음질놓고, 읍내 쪽에서 검정 스리쿼터가 먼지 구름을 끌면서 득달 같이 달려들곤 했다.
작품의 발표연대가 1984년이고 보니, 이보다 36년 전이면 5·10 선거가 치러진 1948년으로, 전국에서 유일한 단선 반대로 인한 대립이 선거날부터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양쪽 방향에로의 달음박질이 시작된 것이다. 계엄령이 선포된 후의 어느 날, 망을 보고 있다 들킨 창주가 차에 태워졌을 때, 꽁꽁 묶여 이송되던 강씨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부터 강씨는 정보원의 임무를 부여받은 듯하다.
검거가 토벌로, 선별 검거가 전면 토벌로 변했다. 미군 정찰기가 한라산을 감돌고 해안선 따라 노상 미군함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오락가락했다. 이제 토벌대의 눈에는 섬주민이라면 모두 산폭도와 한통속으로 보였다. (중략) 마침내 섬은 해변과 산, 두 세력으로 대치되었다. (중략) 죽은 자는 자기가 무엇 때문에 죽는지를 몰랐다. 사소한 변덕이 생사를 판가름하고 생존은 전혀 우연의 소치였다. 새밋드르 청년 다섯 명이 마을 어귀의 늙은 팽나무 밑에서 한꺼번에 처형당한 것도 이때였다. 마침내 소개령이 떨어져 곳곳에서 중산간 부락을 태우는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이어서 이런 와중에서의 강씨와 임씨의 출현이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 대립상은 치열의 도를 더해 간다.
개털 모자를 눈 밑까지 푹 눌러써 얼굴을 가린 강씨가 소개민들을 임시 수용한 일주 도로변 덕천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타나 입산자 가족 색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그날이었단다. 눈비가 섞어치는 매운 날씨였다. 삼엄한 경비 속, 모두들 눈 감은 채 숨죽여 앉아있는 가운데 누구한테 향할지 모르는 그 손가락질, 그 손가락 총. (중락)
임씨가 낯 검은 야차의 모습으로 새밋드르 주민들 앞에 처음 선보인 것도 그날이었다. 우물쭈물
하는 강씨를 윽박지르며 그 무서운 장면 속을 휘젓고 다니던 임씨······ 이 두 사람의 동반자 관계는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편, 산길로 몰려가는 창주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처절한 고난의 길이 아래와 같이 서술 · 묘사되어 나간다.
내내 말 한마디 없이 걸어가던 어린 용주가 마침내 울음을 터트렸다. 발이 시리다고 했다. 창주가
쌀부대를 어머니의 이불짐 위에 얹고 질빵을 걸어 동생을 둘쳐업었다. 서편 하늘 엷은 구름장 뒤에 얼굴 가린 해는 어린 동생의 시린 낯빛처럼 창백하게 보였다. 구름자락이 내려와 닿고 있는 한라산기슭까지 광막하게 펼쳐진 눈 벌판 위에 꾸불거리던 그 실날 같던 행렬. 해변에서 강풍이 들판을 쓸며 치달아올 때마다 뿌옇게 눈보라가 일어나 행렬의 자취를 가뭇없이 지워버리곤 했다. 고난은 벌써 시작이었다. 눈 깊은 산밑에 이르자 잠긴 채 눈구덩이에 빠져 나뒹구는 사람들이 속출하더니 청년 한 명이 탈출하려고 계곡 아래로 몸을 굴렸다가 총 맞고 죽었다. 청년이 흘린 피는 흰눈에 번져 소름끼치도록 붉었다. 눈 속의 피는 마을의 동백꽃도 그렇게 붉지는 않았다.
앞에 인용한 두 대목에는 각각 집단 이기주의가 지나치게 작용하고 있음이 드러나 있다. 이것은 쌍방간의 화해를 어렵게 만든다. 남의 그릇에 든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처럼, 분열 투쟁의 책임도 상대방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화해에 다가가기 위해서 작가는 잘못이 있으면 양쪽을 다 비판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래서 현기영 작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지나친 것과 매정한 것은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하찮은 것들이 얼마나 끔찍한 민족적 불행으로 치닫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어, 화해로 돌아설 필요성을 깨닫는 기틀을 마련해 준다. 같은 마을 사람들인데도 반대파를 색출해내고, 그 정도에 있어서 섬 주민보다도 뭍에서 온 이북 청년으로 보이는 인물이 더욱 엄격했던 사실을 증언하는가 하면, 입산 대열에서 일탈하는 자에게 가차없이 총격을 가하고, 그래서 눈 속으로 흐른 피가 동백꽃보다도 더 붉다는 정경 묘사 등이 그것인데, 이런 태도와 솜씨는『고요한 돈 강』에서 보여준 숄로호프의 그것에 버금간다고 하겠다. 이런 공정한 태도는 아래와 같은 비평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4·3사건을 바라보는 현기영의 시각은 철저히 중간자적 입장이다. 외형적으로는 우익 테러리즘의 극심한 피해상황에 치중하는 듯하면서도 그러한 비극적 사태를 낳게 한 좌익계의 현실을 무시한 무분별한 경거망동, 모험주의에 대해서도 대단히 비판적이다. 역사의 헤게모니를 노리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당사자들의 논리는 부차적인 부분이다. 작가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이데올로기의 와중에서 희생당한 민중들의 수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5)
작가가 사태 수습 뒤에도 비판의 강도를 늦추지 않고, 아니, 오히려 더하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준엄하게 한 것도, 당사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잘못을 빨리 자인하여 하루 바삐 참회의 장으로 나오도록 하려는 의도에서이다. 이제 사태 수습후의 주요 사건들을 한두 가지 알아보기로 하자.
강영조씨는 이장이 되어 축성 공사를 감독하게 되는데, 새로 생긴 일인(一人) 지서의 장이 된 임 주임의 치부(致富)를 노린 계책에 굴복하여, 지서의 후생과 마을 건설에 보태 쓰자고 제의하여 수백 년 묵은 팽이나무 두 그루를 베어내어, 임씨로 하여금 개인적 축재의 수단이 되게 하는가 하면, 본토에서 사변이 터진 6월말경에는 불온 삐라 살포극을 조작하는 것이다.
밤 사이에 느닷없이 불온 삐라가 성담 두 군데 나붙어 온 부락이 대경실색하고 있던 아침나절에 읍내에서 스리쿼터가 들이닥쳐 범인을 색출한다고 남정네들을 연행해 갔다. 그것이 육지에서 큰 동란이 터져 입산 경력이 있는 남정네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예비검속인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 밤중에 몰래 삐라를 붙여 부락내의 불온분자의 소행처럼 조작극을 구민 자가 다름아닌 임씨와 강씨였다. 그렇쟎아도 예비검속에는 으레 위험시되는 인물들은 가려내어 제거되기 마련인데, 애꿎게도 새밋드르 청년들 여럿이 끼여 죽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조작극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 삐라 붙이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공교롭게도 어머니였다.
인용문에 들어 있는 ‘예비검속’은 최근(6월초)에 방영된 에스 비 에스의 ‘뉴스 추적’이 보여준 바와 같이, 재판을 거치지 않고 인명이 처리되는 그 자체만으로도 반 인권적인 끔찍한 처사인데, 하물며 조작에 의한 희생자를 남발했음을 고발한 이 작품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글쓰기로서의 선구적 의의가 자못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작품세계는 이런 조각 사실을 전해 들은 창주가, 학도병 모집에 응모하여 6·25에 참전하고 휴전후 제대하여 교사가 되어, 팽나무 벌목의 부당성과 삐라 조작극을 발설, 이장 강씨와, 순사 옷 벗고 마을 처녀와 결혼, 읍에다 큰 장사를 차린 임씨에게 도전하여 불편한 관계에 놓였던 과서 회상에서 현재로 되돌아와, 강씨의 유언을 듣기 위해 이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씨 아들의 입을 통해, 임씨는 눈치를 챈 듯 돌아가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걸음을 재촉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작품은, 화해 여부를 놓고 서로 엇갈린 견해를 불러 일으키니, 이는 주로 강씨와 임씨의 태도의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 같다. 강씨는 섬사람으로서 소극적 · 피동적이어서 나름대로 이해될 만한 면도 있었음에 반하여, 임씨는 뭍에서 온 인물로 적극적 · 능동적인 외길을 걸었을 뿐 아니라 부정 부패나 조작 음모에 깊이 간여했기 때문에, 눈치를 채고 가 버린 것이 여실히 말해주듯, 아직은 창주를 만날 심경이 아니어서 고백 · 화해와는 거리가 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북에서 설 자리를 잃고 남하한 그로서는 자신의 몰락에 대한 분함이 좀처럼 풀릴 수 없는 데다가, 본토에서 동란마저 터지고 말았으니 더욱 심사가 괴로웠을 것이다. 아래와 같은 김도연의 해설도 이런 양면적 해석의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가해자는 개인 이전에 개인을 발광케 만든 시대(「길」)이기 때문에 모진 시대의 현장을 묻어버린 아스팔트는 화해의 상징으로까지 설정된 것처럼 보인다(「아스팔트」). 하지만 작가의 지적대로 중요한 것은 당사자간의 화해가 그대로 시대가 남긴 집단편견의 해소로 매듭될 수 있느냐의 물음이다. 이 점에서 당사자간의 묵은 응어리를 푸는 것만이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되지 못한다. 아스팔트는 화해의 첩경이기도 하지만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은 채 더욱 견고해지는 집단편견의 그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데올로기 문제를 중간자 입장에서 증언한 작가의 한계가 드러난다. 집단편견에 대한 본질적 분석을 접어둔 채 민중의 수난사에만 치중할 때 작가의 화해 시도 역시 세월이 약일 수 있다는 지극히 소박하고 제한적인 결론만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6)
그리고, ‘유언의 자리에서의 만남’을 ‘화해의 실현을 의미한다’면서도, 창주가 걸어가는 길을 ‘진실을 은폐하는 아스팔트이고 강인한 불모성으로 특징지워지는 아스팔트이다’7)고 한 성민엽의 견해 또한 대동소이한 관점이라 하겠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이 작품은 완전한 회해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바야흐로 화해할 희망의 계기는 마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나오는 말
지금까지 분석 검토한 바와 같이, 현기영의 소설집『아스팔트』의 앞부분에 실린 ‘제주 4·3’ 관련 연작 세 편(「잃어버린 시절」과 「길」 · 「아스팔트」)은 역설이냐 부조리냐, 우연이냐 필연이냐, 화해냐 응고냐 등등, 우리 문학상의 중요한 쟁점들을 보여 주는 매우 의미 깊은 작품들이다.
바야흐로 광복 60주년을 맞는시점에서, 우리는 해방공간에서 겪었던 ‘제주 4·3 사건’의 좌우 대립이 본토에서 끔찍한 동족상잔으로 번짐으로써 발생한 가족의 이산과 국토의 분단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있다. 그리하여 가족의 재결합과 국토의 재통일을 이룩할 역사적인 시점에 놓인 7천만 겨레는 일찍이 현기영 작가가 증언한 통일정부를 수립하지 못함으로써 겪은 민족적 불행을 뼈에 새겨 용서와 화해에 의한 획기적인 전환의 장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이를 위해 30년의 창작 활동을 ‘현재적 삶이 4·3 체험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짐으로써 일정한 의미가 부여되’8)도록 힘써 왔고, 지금도 화해의 주장을 단념하지 않고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한 예를 들면 지난 5월 28일, 서해 최북단 사곶해변에어 한국문학평화포럼(화장 고은)이 주최한 ‘한반도 펴화와 상생을 위한 백령도 문학축전’의 축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 점이다.
최북단에서 분단 현실을 직시하고 통일을 꿈꾸어 보고자 이곳에 왔다. (중략) 최북단에서 형제의 땅을 지척에 두고도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는 인간이야말로 갈매기나 꽃게보다 못한 하등동물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9)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문인들은 평화를 위한 글쓰기의 귀감인 현기영 작가의 「아스팔트」를 비롯한 ‘제주 4·3’ 관련 작품과 사곶해변 발언에 귀를 기울여, 그 화해의 정신을 거울삼아 모든 문학적 역량을 총결집하여, 감격적인 새로운 8·15 60주년을 맞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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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현기영, <기억 투쟁으로서의 문학>, 대산문화재단,『평화를 위한 글쓰기』(5월 24일), 108쪽
2) 바흐찐著, 『小說 時空間』, 新時代社, 1987, 319쪽, 引用者 國譯
3) 황석영,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177>, 중앙일보, 2005. 6. 9, 23쪽
4) 성민엽, <변경과 중심의 변증법>, 최원석 · 임규찬편,『4월혁명과 한국문학』, 창작과비평사,
2002, 128~129쪽
5) 金度淵解說, <제주도정신이 보여준 의미>, 현기영著, 『아스팔트』, 창작과비평사, 1996, 361쪽 6) 同上, 362~363쪽
7) 上揭, 『4월혁명과 한국문학』, 129쪽
8) 同上, 131쪽
9) 최재봉, <형제의 땅, 그 머나먼 지척이여>, 『한겨레』, 2005. 5. 3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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