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파는 사람
이상국
젊어서는 몸을 팔았으나
나도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데다
근력 또한 보잘것없었으므로
요즘은 시를 내다 판다
그런데 내 시라는 게 또 촌스러워서
일년에 열 편쯤 팔면 잘판다
그것도 더러는 외상이어서
아내는 공공근로나 다니는
게 낫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저마다 품격이 있는 법.
이 장사에도 때로는 유행이 있어
요즘은 절간 이야기나 물푸레나무 혹은
하늘의 별을 섞어내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서울에서 주문 오기도 한다
보통은 시골보다 값을 조금 더 쳐주긴 해도
말이
그렇지 떼이기 일쑤다
그래도 그것으로 자동차의 기름도 사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는데
가끔 장부를 펴놓고 수지를
따져보는 날이면
세상이 허술한게 고마워서 혼자 웃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 시의 원가가 만만찮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에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시 파는 집 간판을 내리지 않을 작정이다
이상국 시인
1946 강원도 양양 출생
1976 <심상>에 시 <겨울추상화>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동해별곡(東海別曲)> 민족문화사
1985
<내일로 가는 소> 동광출판사
1989
<우리는 읍으로 간다>1992년
<집은 아직 따뜻하다>1998년, 창비
<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2005년 창비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유심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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