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에는 아내의 배가 노아의 방주처럼 정박해 있다.
아내의 부푼 배가 자꾸만 들썩이는 이유를
방주 속 삼백 예순 다섯 종의
날짐승과 길짐승 때문이라고 해석하면서부터
나는 밤마다 잠을 설쳤다.
아내는 자꾸만
맹수처럼 코를 골았고
전원을 꺼놓지 않은 TV는 한밤 내 비를 쏟았다.
창 밖은 지금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
네온사인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술집의 타락한 형광등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불연 지붕 위에 신의
사자처럼 먹구름이 몰려왔다.
모든 지붕 위로 심판의 빗줄기가 그어졌다.
땅 위로 무수한 방언들이 쏟아졌을 때,
아내의 배가
서서히 노 젓기 시작했다.
나는 약속된 아침을 찾아 동승한 비둘기,
아내의 배가 가 닿아야할 아라라트 산은
또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아직도 내겐 한 장의 푸른 감람나무 잎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문득 뱃속에 새 생명을 싣고 잠든 아내의 얼굴이
성경 속 말씀처럼 편안하게 보였다.
잠든 아내의 얼굴에서 감람나무 이파리처럼
맑은 한 장의 웃음을 찾았다.
나는
잠든 아내의 배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아내의 부풀어 오른 방주가 내 품에
포근히 정박해 왔다.

이동호 시인
제6회 ≪시산맥상≫ 대상 수상
200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조용한 가족>으로 시부문 당선
<난시> 동인
인터넷 <창작노트> 동인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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