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거려서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 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이덕규 시인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현대시학에 「揚水機」 외 네 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2004년 제9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2003년 문학동네
현재 화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음.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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