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 시모음 6
지관을 놀리다
풍수 선생은 본래 허망된 말만 하는 사람이라
남이다 북이다 가리키며 부질없이 혀를 놀리네.
청산 속에 만약 명당 자리가 있다면
어찌 네 아비를 파묻지 않았나.
嘲地官 조지관
風水先生本是虛 指南指北舌飜空 풍수선생본시허 지남지북설번공
靑山若有公侯地 何不當年葬爾翁 청산약유공후지 하불당년장이옹
지사를 조롱함
가소롭구나 용산에 사는 임처사여
늘그막에 어찌하여 이순풍을 배웠나.
두 눈으로 산줄기를 꿰뚫어 본다면서
두 다리로 헛되이 골짜기를 헤매네.
환하게 드러난 천문도 오히려 모르면서
보이지 않는 땅 속 일을 어찌 통달했으랴.
차라리 집에 돌아가 중양절 술이나 마시고
달빛 속에서 취하여 여윈 아내나 안아 주시게.
嘲地師 조지사
可笑龍山林處士 暮年何學李淳風 가소용산임처사 모년하학이순풍
雙眸能貫千峰脈 兩足徒行萬壑空 쌍모능관천봉맥 양족도행만학공
顯顯天文猶未達 漠漠地理豈能通 현현천문유미달 막막지리기능통
不如歸飮重陽酒 醉抱瘦妻明月中 불여귀음중양주 취포수처명월중
*이순풍(李淳風)은 당나라 사람으로 역산(曆算)에 밝았고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었다.
*천체의 형상도 모르면서 땅의 이치를 안답시고 명당이라는 곳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누비고 다녔으나
모두 헛수고를 한 것이니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조롱을 했다.
요강
네가 있어 깊은 밤에도 사립문 번거롭게 여닫지 않아
사람과 이웃하여 잠자리 벗이 되었구나.
술 취한 사내는 너를 가져다 무릎 꿇고
아름다운 여인네는 널 끼고 앉아 살며시 옷자락을 걷네.
단단한 그 모습은 구리산 형국이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비단폭포를 연상케 하네.
비바람 치는 새벽에 가장 공이 많으니
한가한 성품 기르며 사람을 살찌게 하네.
溺缸 요항
賴渠深夜不煩扉 令作團隣臥處圍 뢰거심야부번비 영작단린와처위
醉客持來端膽膝 態娥挾坐惜衣收 취객지래단담슬 태아협좌석의수
堅剛做體銅山局 灑落傳聲練瀑飛 견강주체동산국 쇄락전성연폭비
最是功多風雨曉 偸閑養性使人肥 최시공다풍우효 투한양성사인비
*오줌이 거름이 되고 또 비바람 치는 새벽에도 문밖에 나가지 않고 편안히 일을 보게 하므로 사람을 살찌게 한다.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택하여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장기
술친구나 글친구들이 뜻이 맞으면
마루에 마주 앉아서 한바탕 싸움판을 벌이네.
포가 날아오면 군세가 장해지고
사나운 상이 웅크리고 앉으면 진세가 굳어지네.
치달리는 차가 졸을 먼저 따먹자
옆으로 달리는 날쌘 말이 궁을 엿보네.
병졸들이 거의 다 없어지고 잇달아 장군을 부르자
두 사가 견디다 못해 장기판을 쓸어 버리네.
博 박
酒老詩豪意氣同 戰場方設一堂中 주로시호의기동 전장방설일당중
飛包越處軍威壯 猛象준前陳勢雄 비포월처군위장 맹상준전진세웅
直走輕車先犯卒 橫行駿馬每窺宮 직주경차선범졸 횡행준마매규궁
殘兵散盡連呼將 二士難存一局空 잔병산진연호장 이사난존일국공
*주객(酒客)과 시우(詩友)가 대청 마루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읊었다.
포(包), 상(象), 차(車), 마(馬)의 활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바둑
흑백이 종횡으로 에워싼 것처럼 진을 치니
승패는 오로지 때를 잡고 못 잡음에 달렸네.
사호가 은거하여 바둑으로 시국을 잊었고
삼청 신선들 대국에 도끼자루 다 썩더라.
뜻밖의 속임수로 세력 뻗을 점도 얻고
잘못 두고 물러 달라 손 휘두르기도 하는구나.
한나절 승부를 걸고 다시금 도전하니
바둑알 치는 소리에 석양이 빛나네.
棋 기
縱橫黑白陳如圍 勝敗專由取舍機 종횡흑백진여위 승패전유취사기
四皓閑秤忘世坐 三淸仙局爛柯歸 사호한칭망세좌 삼청선국난가귀
詭謨偶獲擡頭點 誤着還收擧手揮 궤모우획대두점 오착환수거수휘
半日輪영更挑戰 丁丁然響到斜輝 반일윤영갱도전 정정연향도사휘
*사호(四皓)는 진시황 때 난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은 네 은사(隱士).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녹里先生).
*삼청(三淸)은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으로 신선들이 산다는 궁의 이름이다.
안경
강호에 사람이 늙어 갈매기처럼 희어졌는데
검은 알에 흰 테 안경을 쓰니 소 한 마리 값일세.
고리눈은 장비와 같아 촉나라 범이 웅크려 앉았고
겹눈동자는 항우와 같아 목욕한 초나라 원숭이일세.
얼핏 보면 알이 번쩍여 울타리를 빠져 나가는 사슴 같은데
노인이 시경 관저편을 신나게 읽고 있네.
소년은 일도 없이 멋으로 안경 걸치고
봄 언덕으로 당나귀 거꾸로 타고 당당히 다니네.
眼鏡 안경
江湖白首老如鷗 鶴膝烏精價易牛 강호백수노여구 학슬오정가역우
環若張飛준蜀虎 瞳成項羽沐荊후 환약장비준촉호 동성항우목형후
삽疑濯濯穿籬鹿 快讀關關在渚鳩 삽의탁탁천리록 쾌독관관재저구
少年多事懸風眼 春陌堂堂倒紫류 소년다사현풍안 춘맥당당도자류
*각 행의 끝나는 글자들이 모두 동물 이름이다.
갈매기 구(鷗), 소 우(牛), 범 호(虎), 원숭이 후(후), 사슴 록(鹿), 비둘기 구(鳩), 눈 안(眼), 당나귀 류(류)
*접을 수 있는 안경 다리가 두루미 무릎을 닮았다고 해서 학슬(鶴膝)이라 불렀다.
*오정(烏精)은 거무스럼한 안경알을 가리킨다.
맷돌
누가 산 속의 바윗돌을 둥글게 만들었나.
하늘만 돌고 땅은 그대로 있네.
은은한 천둥소리가 손 가는 대로 나더니
사방으로 눈싸라기 날리다 잔잔히 떨어지네.
磨石 마석
誰能山骨作圓圓 天以順還地自安 수능산골작원원 천이순환지자안
隱隱雷聲隨手去 四方飛雪落殘殘 은은뇌성수수거 사방비설낙잔잔
*돌로 만든 무생물체도 그가 노래하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태어났다.
돈
천하를 두루 돌아 다니며 어디서나 환영받으니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 하여 그 세력이 가볍지 않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니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네.
錢 전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주유천하개환영 흥국흥가세불경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死捨死能生 거복환래래복거 생능사사사능생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산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이 돈이니 당시에도 그 위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떨어진 꽃
새벽에 일어나 온 산이 붉은 걸 보고 놀랐네.
가랑비 속에 피었다 가랑비 속에 지네.
끝없이 살고 싶어 바위 위에도 달라붙고
가지를 차마 떠나지 못해 바람 타고 오르기도 하네.
두견새는 푸른 산에서 슬피 울다가 그치고
제비는 진흙에 붙은 꽃잎을 차다가 그저 올라가네.
번화한 봄날이 한차례 꿈같이 지나가자
머리 흰 성남의 늙은이가 앉아서 탄식하네.
落花吟 낙화음
曉起飜驚滿山紅 開落都歸細雨中 효기번경만산홍 개락도귀세우중
無端作意移粘石 不忍辭枝倒上風 무단작의이점석 불인사지도상풍
鵑月靑山啼忽罷 燕泥香逕蹴全空 견월청산제홀파 연니향경축전공
繁華一度春如夢 坐嘆城南頭白翁 번화일도춘여몽 좌탄성남두백옹
*초목과 꽃이 풍성한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여 읊은 작품이다.
눈 속의 차가운 매화
눈 속에 핀 차가운 매화는 술에 취한 기생 같고
바람 앞에 마른 버들은 불경을 외는 중 같구나.
떨어지는 밤꽃은 삽살개의 짧은 꼬리 같고
갓 피어나는 석류꽃은 뾰족한 쥐의 귀 같구나.
雪中寒梅 설중한매
雪中寒梅酒傷妓 風前槁柳誦經僧 설중한매주상기 풍전고류송경승
栗花落花尨尾短 榴花初生鼠耳凸 율화낙화방미단 유화초생서이철
눈 오는 날
늘 눈이 내리더니 어쩌다 개어
앞산이 희어지고 뒷산도 희구나.
창문을 밀쳐 보니 사면이 유리벽이라
아이에게 시켜서 쓸지 말라고 하네.
雪日 설일
雪日常多晴日或 前山旣白後山亦 설일상다청일혹 전산기백후산역
推窓四面琉璃壁 分咐寺童故掃莫 추창사면유리벽 분부사동고소막
*김삿갓이 어느 절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청하자 중이 거절했다.
김삿갓이 절을 나가려 하자 혹시 김삿갓이 아닌가 생각하고 시를 짓게 했다.
혹(或), 역(亦), 벽(壁), 막(莫) 같은 어려운 운을 불러 괴롭혔지만 이 시를 짓고 잠을 자게 되었다.
눈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雪 설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 家家첨前淚滴滴 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