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 초대시와 글

김삿갓 시모음

정영진 2010. 9. 22. 18:39
元生員(원생원)
 
 
日出猿生原
 
일출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猫過鼠盡死
 
묘과서진사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黃昏蚊첨至
 
황혼문첨지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夜出蚤席射
 
야출조석사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구절마다 끝의 세 글
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의 음을 빌려 쓴 것이다.

 

 

 
難避花(난피화)-피하기 어려운 꽃
 
 
 
靑春抱妓千金開
 
청춘포기천금개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白日當樽萬事空
 
백일당준만사공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鴻飛遠天易隨水
 
홍비원천이수수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蝶過靑山難避花
 
접과청산난피화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妓生合作(기생합작)-기생과 함께 짓다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嚥乳章三章(연유장삼장)-젖 빠는 노래
 
 
父嚥其上
 
부연기상 
 
시아비는 그 위를 빨고

 

 

婦嚥其下
 
부연기하
 
며느리는 그 아래를 빠네.

 

 

上下不同
 
상하부동
 
위와 아래가 같지 않지만
 
 
 
其味卽同
 
기미즉동
 
그 맛은 한가지일세.
 
 
  
父嚥其二
 
부연기이 
 
시아비는 그 둘을 빨고
 
 
 
婦嚥其一
 
부연기일
 
며느리는 그 하나를 빠네.
 
 
 
一二不同
 
일이부동
 
하나와 둘이 같지 않지만

 

 

其味卽同
 
기미즉동
 
그 맛은 한가지일세.  

 

 

父嚥其甘
 
부연기감
 
시아비는 그 단 곳을 빨고

 

 

婦嚥其酸
 
부연기산
 
며느리는 그 신 곳을 빠네. 
 
 
 
甘酸不同
 
감산부동
 
달고 신 것이 같지 않지만
 
 
 
其味卽同
 
기미즉동
 
그 맛은 한가지일세.
 
 
*어느 선비의 집에 갔는데 그가 "우리집 며느리가 유종(乳腫)으로 젖을 앓기 때문에 젖을 좀 빨아 주어야 하겠소"라고 했다. 김삿갓이 망할 놈의 양반이 예의도 잘 지킨다고 분개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

 
沃溝金進士(옥구김진사)-옥구 김 진사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옥구 김 진사가
 
 
與我二分錢
 
여아이분전
 
내게 돈 두 푼을 주었네.
 
 
一死都無事
 
일사도무사
 
한번 죽어 없어지면 이런 꼴 없으련만
 
 
平生恨有身
 
평생한유신
 
육신이 살아 있어 평생에 한이 되네.  
 
 
*김삿갓이 옥구 김 진사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돈 두 푼을 주며 내쫓았다. 김삿갓이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 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었다.

 
兩班論(양반론)-양반
 
 
彼兩班此兩班
 
피양반차양반
 
네가 양반이면 나도 양반이다.
 
 
班不知班何班

 

반부지반하반
 
양반이 양반을 몰라보니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朝鮮三姓其中班
 
조선삼성기중반
 
조선에서 세 가지 성만이 그중 양반인데
 
 
駕洛一邦在上班
 
가락일방재상반
 
김해 김씨가 한 나라에서도 으뜸 양반이지.
 
 
來千里此月客班
 
내천리차월객반
 
천 리를 찾아왔으니 이 달 손님 양반이고
 
 
好八字今時富班
 
호팔자금시부반
 
팔자가 좋으니 금시 부자 양반이지만
 
 
觀其爾班厭眞班
 
관기이반염진반

 

부자 양반을 보니 진짜 양반을 싫어해
  
 
客班可知主人班
 
객반가지주인반
 
손님 양반이 주인 양반을 알 만하구나.
 
*김삿갓이 어느 양반 집에 갔더니 양반입네 거드럼을 피우며 족보를 따져 물었다. 집안 내력을 밝힐 수 없는 삿갓으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주인 양반이 대접을 받으려면 행실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먼 길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니 그 따위가 무슨 양반이냐고 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