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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끝별의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정영진 2010. 7. 24. 02:19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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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갔다 돌아오는 길, 고속화도로 길 위에 새겨진
      검은 타이어 자국을 보았습니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다  중앙분리대 근처에서 끝난, 다시 갓길에  서 멈춘 자국
      그러니까, 저 금단의 분리대를 박고 저 금단의 갓길을 넘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데...... 
     자꾸만 감겨오는 눈꺼풀에도 어쩌지 못하고 달려야했을
      고단한 삶의 담 하나를 아프게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곤하면 가다가도 잠시 쉬어가야 합니다.

     담이 보이면 무명에 획을 긋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출처 : 이효경시인의 뜰
글쓴이 : 덕당 류창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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