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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수익의 [또 다른 생각]

정영진 2010. 7. 24. 02:11

또 다른 생각

 - 이수익
  
                                                                    

   뭉개지는 것도 방법이다.
  세상을 사는 데에는
  내가 각을 지움으로써 너를 편안하게
  해줄 수도 있다. 선창에서
  기름때 묻은 배끼리 서로 부딪치듯이
  부딪쳐서 조금 상하고 조금 얼룩도 생기듯이
  그렇게, 내 침이 묻은 술잔을 네가 받아 마시듯이
  자, 자, 잔소리 그만하고 어서 술이나 마셔!
  취한 기분에 붙들려 소리를 버럭 내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시간도 참으로 소중하고
  그래서는 안 되는 관계도 소중하다.
  시퍼렇게 가슴에 날을 세우고
  찌를 듯이 정신에 각을 일으켜
  스스로 타인 절대출입금지 구역을 만들어 내는 일
  그리하여 이 세상을 배신하고 모반하는 일은
  네게는 매우 소종한 덕목이다.
  안락한 일상의 유혹을 경계하고 저주하라, 그대
  불행한 시인이여.

 

  <현대시  200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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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시장에서 팔려고 내놓은 차에 대해 구매자보다 판매상이 훨씬 더 잘 아는 것은 당연하다.

구매자가 차의 품질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판매상은 성능이 떨어지는 차를 실제 가치보다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려는 유혹을 떨치기는 어렵다.

구매자 또한 과연 이 차가 제값을 하는 차일까 라는 불안 심리가 있기 마련이어서

매겨진 가격에 의구심을 갖는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버클리대의 애컬로프 교수는 중고차와 보험 등의 거래에서 쌍방 동일한 양의 정보를 가지기 보다는 어느 한쪽이 더 많은 정보를 갖기 쉬운데, 그 불균형으로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가격이 왜곡되기 쉽다는 '정보의 비대칭' 이론을 내놓은 바 있다.

그가 제시한 이론 모형이 '중고차 시장' 인데 그 이론은 주식,부동산, 금융, 의료, 정부정책 등 자본주의 상황하의 거의 모든 상거래에서 발생되며 이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고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이라는 현상이 유발된다.

사고를 몇 번 쳐 겉만 번드레하고 속은 형편없는 차라 할지라도 불리한 사실을 숨기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유리한 정보만 내놓게 되면 그것은 일종의 도덕적 해이에 해당되는 것이고, 구입자는 역선택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온통 이 나라를 들쑤시고 있는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도 그렇다. 애시당초 정부에서는 정보의 공개 (FTA 등과의 관련도 포함하여)를 소홀히 하고 어물쩡 넘어가려했던 것이 문제를 유발했으며, 국민들도 인터넷 등에서 유통되고 있는 광우병 관련 정보들의 비대칭으로 부풀려진 광우병 위험이 문제를 더 키웠다. 정부와 언론 그리고 학자들도 미리미리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그 진실을 알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 와서 상당수의 학자들이 안전성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는 학자적 양심으로 발언키도 어렵다고 토로할 정도다. 재협상 주장에 동참한 일부 학자들 역시 심리학자 베리 싱어의 '잘못된 문제풀이 법칙'처럼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확증하는 자료만을 찾으려는 경향'만 있을 뿐, 틀린 것이 명백할 때조차 가설을 바꾸려 하지 않는 추세다.


쇠고기 협상 추진 과정에서 국민 여론 수렴을 하지 않은 정부의 오류와 과학자적 양심을 걸고 전문가적 견해를 밝혀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학자들의 직무유기, 그리고 입장을 바꾸어 만약 여당이었다면 지금의 여당과 별반 다를 게 없었을 야당의 당리당략, 각을 전혀 지우지 않고 못먹어도고 식으로 나가는 일부 시민단체 등등으로 인하여 국민들만 점점 험해지고 있다.


하기야 뭉개지는 것이 방법이면 망가지는 것은 그보다 더 먼저의 방법이다.

너의 편안을 위해 나를 망가트려 각의 날을 지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아는 희생, 겸손, 양보, 비움, 대도무문,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등등으로 요약되는 덕목이다. 그냥 뭉개지고 망가지며 두루뭉실이 아니다.

그게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서로 뻗대고 치달아서 될 게 있고 안 될 게 있다. '선창에서 기름때젖은 배들끼리 서로 부딪치듯/ 부딪쳐서 조금 상하고 더러 얼룩도 생기듯' 다투다가도 '그렇게, 내 침이 묻은 술잔을 네가 받아 마시듯이' 네 숟가락 휘젓던 된장국물을 내가 후룩 마시듯이 누가 먼저 '자, 자, 잔소리 그만하고 어서 술이나 마셔!'라고 소리라도 질러주든지, '졌다 졌어!' 누가 먼저 백기 들지 않고도 각이 문드러질 수는 없는걸까.


'그래서는 안되는 시간'과 '그래서는 안되는 관계'의 소중함은 시인 따위에게나 던져버리고...

'시퍼렇게 가슴에 날을 세우고/ 찌를듯이 정신에 각을 일으켜/ 스스로 타인 절대출입금지구역을 만들어내는 일'과

'그리하여 이 세상을 배신하고 모반하는 일'의 '매우 소중한 덕목'은 그들에게나 맡겨

'안락한 일상의 유혹을 침 뱉고

저주하라' 마음껏 그렇게 하라고 하고선,

그들 정서의 기울기와 비대칭으로 불행의 작두 위를 걸어가는 모습이나 보면 안 되겠나?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다고 하는 데 '또 다른 생각'이라도 하면 누가 당장 죽기라도 하나?// ㅎㅎㅎ 좋은 하루 되시구요.^*!!


출처 : 이효경시인의 뜰
글쓴이 : 덕당 류창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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