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 초대시와 글

[스크랩] 임영조의 [도꼬마리씨 하나]

정영진 2010. 7. 23. 19:04

도꼬마리씨 하나

-임영조


멀고 먼 산행길

어느덧 해도 저물어

이제 그만 돌아와 하루를 턴다

아찔한 벼랑을 지나

덤불 속 같은 세월에 할퀸

쓰라린 상흔과 기억을 턴다

그런데 가만! 이게 누구지?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억센 가시손 하나

나릐 남루한 바짓가랑이

한 자락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온

도꼬마리씨 하나

왜 하필 내게 붙어왔을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예까지 따라온 여자같은

어디에 그만 안녕 떼어놓지 못하고

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

아내여, 내친 김에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 주고 사는 거지 뭐

그리고 깨끗하게 늙는 일이다


-임영조 시집 <귀로 웃는 집> 창작과비평

************************************************************************

언젠가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내게 대들듯 이야기합디다

시를 쓴답네 하면서 내 이야기는 왜 하나도 없느냐고...

그냥 씨익 웃고 말았지요 내심으론 뜨끔했지만...

내보일 수 없는 속내는 끝끝내 감추고 말입니다

아는 분이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 설파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독설 뒤에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나이들면서 사랑은 열기가 식고 끈끈한 정 하나 붙잡고 죽음으로 들어간다는 것-

정 중에서 가장 몹쓸 것이 미운 정이라고....

앉거나 설 때 '아이구!"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아내를

측은하게 내려다보며 생각한적이 있었습니다.지금은 그것도 지난일이지만...

출처 : 이효경시인의 뜰
글쓴이 : 덕당 류창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