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꼬마리씨 하나
-임영조
멀고 먼 산행길
어느덧 해도 저물어
이제 그만 돌아와 하루를 턴다
아찔한 벼랑을 지나
덤불 속 같은 세월에 할퀸
쓰라린 상흔과 기억을 턴다
그런데 가만! 이게 누구지?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억센 가시손 하나
나릐 남루한 바짓가랑이
한 자락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온
도꼬마리씨 하나
왜 하필 내게 붙어왔을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예까지 따라온 여자같은
어디에 그만 안녕 떼어놓지 못하고
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
아내여, 내친 김에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 주고 사는 거지 뭐
그리고 깨끗하게 늙는 일이다
-임영조 시집 <귀로 웃는 집> 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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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내게 대들듯 이야기합디다
시를 쓴답네 하면서 내 이야기는 왜 하나도 없느냐고...
그냥 씨익 웃고 말았지요 내심으론 뜨끔했지만...
내보일 수 없는 속내는 끝끝내 감추고 말입니다
아는 분이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 설파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독설 뒤에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나이들면서 사랑은 열기가 식고 끈끈한 정 하나 붙잡고 죽음으로 들어간다는 것-
정 중에서 가장 몹쓸 것이 미운 정이라고....
앉거나 설 때 '아이구!"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아내를
측은하게 내려다보며 생각한적이 있었습니다.지금은 그것도 지난일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