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벤치에서/정연숙
바람이었을까
숲에서 들려오는
그대 목소리
그대 발소리 엿듣다
바람 한 자락이 불어오자
가을 숲이 온통 흔들린다
상처입은 잎을 덮어주는
아름다운 그 사람
길게 자란 수풀을 헤치고
아무 말없이 걸어와서
따사로운 눈빛으로 속삭이고 있다
기다림 속에 깊어진 그리움
갈잎으로 변해서
찬 땅에 떨어져
부서지고 사라진다 해도
불타는 가을 속에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이 가을에는
호젓한 가을 숲길에서
푸르던 잎
어느덧 붉게 타서
그대 가슴에 물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