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 오는 사람/정연숙
비탈진 길 언덕을 오르면
햇살은 잔설 위에 빛나고
숲 속 산새들도 떠난
산자락에는 가랑잎들 모여
겨울이야기 수런대는데
비바람 오랜 세월
여전히 지긋이 눈을 감고
더 푸르게 서 있는
묵은 이끼에 덮힌 소나무
흰꽃을 달고 웃는 모습
조금은 멋져 보이지만
문득 또 외로워 입술을 깨무네
어느 한 곳에 마음 두지 못하고
스스로 바람이 되어 왔다가
솔가지를 가볍게 흔들고
산모퉁이 쓸쓸히 돌아서 가는 그대
어디론가 길 떠나버리면
어쩌면 또 찾아올지 몰라
눈물이 핑그르르 도네
눈길 닿지 않는 곳에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절을 잊은 듯
빈 가지 몸을 뒤채일 때마다
먼 산 보다 내 마음 먼저 꽃 피워
향긋한 풋내
가슴 저 깊은 곳에
봄은 이미 움트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