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 무채시
소나무 이야기
정영진
2018. 9. 8. 22:18
소나무 이야기/정영진
내가 자주 다니는 동산에는
그 길은 신발을 벗고 다녀도 되고요
완만하고 푹신한 소나무 검불들이
마사토 위 너부러져 있어 푹신하거든요
넓적한 맹 감나무 잎,
오밀조밀 아카시아 잎
올곧아 화살대 만들던 신우대
의젓한 소나무 언제나 반기는 곳인데도
난 감사하다는 말을 못했고요
호젓한 곳에서 우우 소리에 귀 기울이니
나이 든 소나무가 모여 수군거리다
입담이 제일 좋은 둥치 큰 소나무가 입을 여는데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어깨 부러진 소나무에게 왜 그랬니 하고 물어보니 사연인즉슨
괜스레 발로 걷어차는 사람이 있고요
지팡이로 때리는 이도 있고
개처럼 오줌을 누는 사람도 있고요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왔다 가지요
우리야 듣기만 하니까 참견은 못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도 있고요
세상 복잡한 이야기도 가끔은 들을 수가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소문 내거나 일러바친다거나 하지 않아요
우리를 밉게도 보지 않지만 입이 무겁다는 것은 다들 아시니까요
숨쉬기가 편하다고 그러면서 좋다 좋다 하면서
땀은 뻘뻘 흘려요
땀 흘리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우리는 발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웃어줄 수도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으니 힘들어도 오세요
이 근처에서는 저보다 오래 산 나무는 없어요
당신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내가 알고 있어요
난 내 몸속에 일 년마다 둥글게 표시 글을 남기거든요
당신을 잊어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