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진 2016. 5. 30. 11:32


                        모래내시장

                                                     하미경

 

야채 썩는 냄새가 고소해지면
장터는 복숭아처럼 익는다
중고 가게 앞 내장을 비운 냉장고가
과일의 단내며 생선냄새며 땀내 들을
가리지 않고 거두어들일 무렵
은혜수선집은 벌써 불을 켜고 저녁의 한 모퉁이를 깁는다
박미자머리사랑을 지나면 몽땅 떨이라느니
거저 가져가라느니 농약을 치지 않은 다급한 말들이
등을 타고 내려 고무줄 늘어난 추리닝처럼
낭창낭창 소쿠리 속으로 들어간다
남들 보기 거시기 하다고 자식들이 말려도
팔 것들을 꾸역꾸역 보자기에 챙겨 나온 할머니는
돌아갈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지
빠진 이 사이로 질질질 과즙을 흘리며
복숭아 짓무른 데를 떼어 물고 오물거린다
문 닫는 속옷 가게에는 땡땡이무늬 잠옷이
잠들지 않고 하늘거린다 잠옷을 입고
늘어지게 자고 싶은 허리 대신
빈 바구니마다 어느새 어둠이 드러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