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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五賊" 시인 김지하

정영진 2010. 10. 6. 15:34

‘五賊’ 시인 김지하
 



1961년 5월16일, 박정희가 탱크를 앞세워 한강을 넘어서자 함석헌은 즉각 이를 군사 쿠데타로 규정한다. “대낮에 정정당당하게 걸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야밤에 군인들이 총칼을 앞세워 서울에 진입한 것”이므로 명백한 범죄 행위라고 꾸짖은 것이다. 실로 통렬한 양심적 지성의 한 발현이었다. 그렇다! 박정희와 그를 추종하는 군부 소장파 장교들은 분명 ‘역천(逆天)의 무리’였다.



당연히, 총칼로 장악한 절대 권력은 빠르게 부패했고 그들이 야심에 차서 진행한 공업화와 조국 근대화 정책은 대다수 농민과 도시 빈민, 노동자들의 삶을 황폐화시키며 예속성이 강한 천민자본주의의 그로테스크한 양상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지상에는 이미 젊음의 눈으로 역사를 목도한 영혼들이 있었으니, 군인들이 짓밟은 4·19정신은 땅 속에 묻혀 군부독재의 억압을 밀어내는 저항의 독트린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박정희의 초법적인 독재가 10년 가까이 계속되던 69년 10월, 서울에서 광주로 한 통의 편지가 발송된다. 발신자는 김지하였고, 수신자는 김준태였다. 두 사람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문예지에 시를 투고해서 이제 막 딱지를 뗀 신인들이었다. 이후 이 문단 초년병들이 주고 받은 10여 차례의 편지는, 행간에 문단 거인들에게나 있을 법한 모색과 폭풍전야의 긴장을 담고 있었다. 편지는 한결같이 격정적인 어조로 이어졌고, 도드라지는 어휘는 놀랍게도 ‘민예’와 ‘저항’이라는 단어였다.



“민예 속에서 ‘저항의 형식’은 혈통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길만이 모든 문제의 관건입니다. 그러나 민예가 가진 일정한 한계를 뛰어넘어서야 하며, 뛰어넘어서는 길은… 오늘날의 사회 현실, 모순과 질병, 고통과 항쟁, 비판과 투쟁, 좌절과 비애 등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방향에서 열립니다”(70년 3월8일자)



당시의 분위기에서 이 편지가 공개되었다면 눈여겨볼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혈기왕성한 한낱 문학청년들의 미학적 열정이 장차 한국 사회를 어떤 곳으로 끌고갈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꽃을 피운 ‘저항’과 ‘민예’는 문학과 미술은 물론 연극과 마당극 등의 연행예술,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나갔으며, 대학가와 노동자들의 사업장, 그리고 모든 시위 현장에서 일반화된 양식이 되어갔다.



김지하의 인식은 하나의 거대한 미학적 프로젝트이자 민주화 운동의 설계도였던 셈이다. 그의 초기 서정시 ‘황톳길’은 물론 군사정권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오적’과 그밖의 담시들 역시 이같은 맥락을 고스란히 담보하는 것들이다.



‘사상계’ 70년 5월호에 발표한 담시 ‘오적’은 박정희 정권과 민주세력간에 목숨을 건 대투쟁의 발화점이자 철권통치에 저항하는 실천정신의 상징이었다.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차관, 장성 등 당대의 지배계층을 장악하고 있던 주류들의 타락과 부패상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이 시는 유신에 반대하는 반체제 전선 최초의 불꽃이었다. 이 시로 인해 김지하는 반공법 위반으로 70년 6월20일에 구속되었다가 9월8일 보석으로 석방되는데 이는 박정희가 군 내부의 친위 쿠데타로 쓰러질 때까지 장장 20여년에 걸쳐 계속된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 투쟁의 서곡이었다. 71년 8월부터 천주교 원주교구청 기획위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김지하는 다음해인 72년 3월 가톨릭 종합잡지 ‘창조’ 4월호에 담시 ‘비어’를 발표해 다시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되었으나 감옥 대신 마산국립병원에 폐결핵으로 강제 입원된다.



유신을 통해 영구 집권을 노리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폭압을 향해 지탄(紙彈)을 쏘아대며 단기필마로 대응해가는 김지하의 순결한 시정신과 전태일의 분신은 이 땅의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태풍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지하는 73년 11월5일 천관우, 주교 지학순, 목사 김재준 등을 비롯한 15인의 이름으로 유신체제 철폐를 위한 ‘민주회복을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6개월여의 잠행에 접어든다. 다음해인 74년 4월25일 친구 하길중의 영화 촬영 현장인 흑산도에서 체포된 김지하는 비상군법회의에서 긴급조치 1, 4호 위반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시국선언문뿐만 아니라 소위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한 배후조정 및 내란 선동 혐의가 그를 사형이란 극한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형 선고는 김지하에게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었으며 당대의 지성들에게 천둥 같은 예언과 용기를 쏟아붓는 힘이 되었다.



감옥 안에 있는 김지하의 고통과 절망은 당대의 반체제 전선에 힘을 공급하는 에너지원과 같았다. 부당하고 불법적인 국가권력과 당당하게 싸워나가는 옥중의 김지하는 이 땅에서 올바른 가치와 자유를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끝없이 환기시켰다. 그의 기나긴 옥중 투쟁은 종속적 근대와 분단, 그리고 군부독재를 해체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드디어 74년 그의 사형 선고를 기점으로 지하에 뿌려진 민주의 씨앗에서 싹이 터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 등 전 계층으로 번져가며 조직적 저항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과 교수, 종교인, 언론인 등이 이 태풍의 동반자들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김수환·윤보선·김대중·함석헌·윤형중·양일동·김영삼·장준하·지학순·김재준·문익환·천관우·리영희·백낙청·황석영·신경림·고은·김병걸·염무웅·임재경…, 빌리 브란트·사르트르·노먼 베일리 등등 김지하가 일으킨 태풍의 단순한 연보만 따라가도 그와 관계된 국내외 인사들을 다 열거할 수 없다. 그것은 거대한 흐름이자 경이로운 시대의 벽화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정치·교육·출판·언론·종교·예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지식인 운동을 격발시킨 그의 시, 아니 민예와 저항 정신은 그때까지 지속되던 문화적 패러다임 전체에 충격을 줄 만큼 매혹적이었으며 동시에 강한 미학적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었다.



‘지식인적 자기 검열(?)’이 전혀 없는 김지하의 순결한 분노와 실천은 미학적으로 민예의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둔 것이면서 동시에 근대의 천박한 물신화를 구원하는 역동성과 새로움을 지니는 것이어서 전염성 또한 강했다. 대학가에 탈춤패와 마당극 놀이패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큰 획을 그은 후라서 새삼스런 설명이 필요없는 사람들이지만 연극반 후배인 김민기·김명곤, 풍물과 탈춤 마당극을 소화한 채희완, 판소리의 임진택, 미술의 오윤·유홍준, 문학의 채광석·김정환(문학의 경우 그의 서울대 후배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문청 전체가 그의 시정신의 괘적을 한번쯤은 답습해 보았다고 할 만큼 전면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등이 김지하의 서울대 후배들로 민예와 저항을 전도하는 미학적 전도사들이 되었다. ‘메아리’라는 민중가요집이 전국의 대학가로 퍼지면서 노래패들이 출현하는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이들의 출현은 민주화 투쟁의 격렬한 현장을 미학적으로 지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관변 예술로 박제화돼 형태만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민예의 형식을 강력한 양식으로 부활시켜 놓았다. 이런 민중문화운동의 전개는 오늘의 민족예술인총연합을 탄생시킨 모태였던 셈이다.

 


 


‘오적’ 아이디어서 출간까지...



“당시 ‘사상계’는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광고를 거의 싣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하의 시를 실은 거죠”. 폐병을 앓던 무명의 청년 시인 김지하를 일약 저항의 상징으로 만들어준 ‘오적(五賊)’ 필화사건. 33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통쾌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권력층과 부유층을 통쾌하게 풍자한 ‘오적’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에는 숨은 조력자가 많았다. 특히 ‘사상계’ 편집 책임을 맡고 있던 김승균(63·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은 김지하에게 ‘오적’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장본인이다.



‘사상계’ 1970년 5월호 주제를 5·16쿠데타로 잡은 김승균은 1970년 3월 초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김지하에게 ‘오적촌’이라 불리던 동·서빙고동에 관한 장시를 청탁했다. ‘구악(舊惡)을 청산하겠다’던 쿠데타 세력이 오히려 신악(新惡)으로 등장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지하가 이를 수락하고 얼마 후 원고를 가져왔지만 우여곡절의 시작일 뿐이었다.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잡지사 내부에 있을지 모를 반발. 김승균은 “원고를 읽어보고 매우 만족했지만 읽어보지 않은 것처럼 부완혁 사장 책상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김승균은 이미 학생운동으로 두번 투옥된 경력이 있었던 만큼 ‘또 무슨 일을 꾸민다’고 의심을 받을지 몰랐고, 자신이 먼저 읽어보고 칭찬하면 글에 관한 한 자부심이 강한 부완혁이 트집을 잡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김지하와도 처음 만난 것처럼 행세했다. “점심을 먹고 와 보니 부사장이 원고를 보며 킬킬대고 있더군요. 속으로 ‘됐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두번째는 인쇄상의 어려움. 김지하는 오적이 짐승에 가깝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평소 잘 쓰이지 않는 한자들을 많이 썼다. 인쇄소에 필요한 활자가 없어 기존 활자를 쪼갠 뒤 조합해서 찍어야 했다.



5월호가 나간 뒤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그대로 지나가는가 싶더니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전선’이 이 시를 전재하면서 사건은 커져버렸다. 결국 김지하와 김승균, 부완혁, 민주전선 편집국장인 김용성이 구속되고 발행인 유진산도 조사를 받으면서 “‘오적’이 ‘신오적’을 만들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2003년 경향신문 인용-

 

 

 

오적(五賊) -전문-

                                                 김지하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것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기를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흘날 백두산 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이래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사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살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족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구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가 부어 남산만하고 목 질기기는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렸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는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겄다.

하루는 다섯 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 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이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쌌는다.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니,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과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 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뚫리면 한 몫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술수 빰치겄다.

또 한 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셋째 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 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 주니 쩔레쩔레 고개 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 놈 뒤 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 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 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 탈 없다더냐.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장성, 제 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 한 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

엄동설한 막사없어 얼어 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 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 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서수 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神出鬼沒)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 고여 삐져나와

추접무화(無化) 눈꼽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 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상이닷, 아사(餓死)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 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 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 날라 질근질근 껌 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 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 듣고 뒤쫓아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 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 자네 핸디 몇이더라?

오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 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 버렸으니 요즘엔 제사 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겄다.

이리 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이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망신시키는 오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 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 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 사돈네 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 벌이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 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 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 뜯고 물어뜯고 업어 메치고 뒤집어 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 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 지지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증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네놈이 오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합쳐서

풍속사범 오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이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 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 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 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바짝 저리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한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 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있나 말 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 말 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 됐다 내 새끼야 그 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 좋아 제 무릎을 탁 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 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같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둘러보니 눈 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가득

몇십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원짜리 수석비석(瘦石肥石), 천만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정치학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속에 에어턴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속에 히터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속에 냉장고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치고 굽도리 삿슈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발라

앞뒷퇴 널찍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매달아 부연얹고

기와위에 이층올려 이층위에 옥상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밑에다 연못파고 연못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층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애태리화기, 호피담뇨 씨운 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만년필, 촛불켠 샨들리에, 피마주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직접 직사곡사 천장바닥 벽조명이 휘황칸칸 호화율율.

여편제들 치장보니 청옥머리핀, 백옥구두장식,

황금부로취, 백금이빨, 밀화귓구멍가게, 호박밑구멍마게, 산호똥구멍마게,

루비배꼽마게, 금파단추, 진주귀걸이, 야광주코걸이, 자수정목걸이, 싸파이어팔찌

에어랄드팔지, 다이야몬드허리띠, 터키석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구멍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바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안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원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식혜, 파인애플화채, 무화과 꽃닢설탕 버무림,

롱가리트유과, 메사돈약과, 사카린잡과, 개구리알구란탕, 청포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두잔 헐레벌떡 석잔넉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묶어 세운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찾고 쪼각달 희게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같은 꾀수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살다 서울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사정 누가있어 바로잡나

잘까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가거라.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곁에 있는 개집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하매,

포도대장 이말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출전:<사상계, 1970>, 이 글을 실었다는 이유로 <사상계>는 폐간되는 수난을 당합니다.



김지하

(1941- ) 전남 목포 출생. 1966년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 졸업. 1969년 「비」, 「황톳길」, 「가벼움」, 「녹두꽃」, 「들녘」 등을 『시인』에 발표하며 등단.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LOTUS)상, 1981년 국제시인회의(POETRY INTERNATIONAL)의 <위대한 시인상>을 수상.


그의 시는 원초적 삶을 영위하는데 저해되는 현실을 강렬한 언어로 비판한다.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체념에 떨어지지 않고 깨어 있으려는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올바른 삶의 회복을 희구하는 그의 시는 비극적인 삶의 체험을 처절하고도 절제된 언어로 표출한다.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풍자시 「오적」을 『사상계』에 발표하게 되는데, 구비문학의 풍자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부패와 거짓을 신랄하게 질타한 이 「오적」과 더불어 「비어」는 장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으나 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시집으로는 『황토(黃土)』(한얼문고, 1970), 『타는 목마름으로』(창작과비평사, 1982), 『대설(大說)』(창작과비평사, 1984), 『애린1』(실천문학사, 1987), 『애린2』(실천문학사, 1987), 『검은산 하얀방』(분도출판사, 1987), 『별밭을 우러르며』(동광출판사, 1989), 『중심의 괴로움』(솔, 1994)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밥』(1984) 등이 있다.



작자의 변

등산하는 사람들에게는 등산하는 사람 나름의 말이 있다. 물론 그 말은 핑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별의 가치는 있다. "산이 저기 있으니까 산에 간다."라는 말이다. 오적이 있으니까 오적을 썼다.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그때 그 무렵 내 심경이 이러구 저러구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만 이야기하자 오적이 있으니까 오적을 썼겠지 그것뿐이다.

1985년 8월 13일

치악산 밑에서 김지하



해설

이 시는 1970년 5월 <사상계>를 통해 '담시(譚詩)'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발표, 파문과 물의를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오적(五賊)>은 일제 통치의 암흑기 속에서 쇠잔하고 소실되어 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졌다. 그러한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문학의 새로운 진로에 큰 빛을 던져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때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 못지 않게 양식과 가락에 대해서도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담시란,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는 짧은' 길이 속에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기습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 시'의 독특한 장르이다. 이러한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내용의 요청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그 정당성을 지닌다.


여기서 '오적(五賊)'이라고 못박은 사람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은 한마디로 말해서 일제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라 할 수 있다. 이 '오적'을 통해서 의도한 바는,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근대화된 질서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일제 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하고, 그런 후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통치 이념의 구현을 해야 한다는 방향 제시였다고 하겠다.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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