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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인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신경림

정영진 2010. 10. 6. 15:31
시인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 

 

 

 

신경림
 

 

 

  "시 좀 더 열심히 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
  오랜만에 만나는 젊은 후배들한테서 흔히 듣는 말이다. 심사나 그밖의 일로 나와 관계가 있는, 갓 시단에 나온 젊은 시인들한테서도 이런 말을 곧잘 듣는다. 시골서 학교에 있거나 출판사 등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그들과 서울의 술집 등에서 몇 번 부딪쳐 물어보면,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대답들이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위해, 더 열심히 시를 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 수긍이 가는 얘기다. 직장이나 그밖의 일이 시 쓰기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충을 알기 힘들 터이다. 나도 젊은 날 먹고 사는 일과 시 쓰기 사이에서 갈등하기 한두 번이 아니다. 시가 잘 안 씌어지면 나는 늘 "이놈의 먹고 사는 일 때문에"라고 생활을 탓했다. 직장이라는 틀 속에 묶여 있어 행동도 사고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시를 쓰기 위해서라는 구실로 직장을 때려치운 일도 없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시에 대한 몰이해도 갈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막상 직장을 그만 두고 난 뒤에 더 좋은 시를 쓴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생활 때문에 늘 불안해서 오히려 시 쓰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먹고 살자니까 아무 일이나 해야 했고, 배운 재주가 글 쓰는 일뿐이니 글과 관계되는 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결국 시에 집중되어야 할 에너지가 다른 글로 분산된 것이 이 기간 동안 좋은 시를 쓸 수 없었던 원인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쓰지 않아도 좋았을 시를 돈 때문에 씀으로써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든 경우도 없지 않았다. 동시대의 시인 가운데는 시 쓰기를 위해 일찌감치 직장생활을 포기한 시인이 여럿 있었지만, 시로써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보아도 틀림이 없다. 대개 삼류 번역이나 하고 잡문 따위나 끄적이면서 아이들 등록금이나 벌고 아파트 은행빛이나 갚는 일로 문필생활을 마감했다.
 

  아무래도 시는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일념으로 직장을 때려치우고 방안에 들어앉아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바로 내가 체험으로 느낀 점이다. 나는 대개 남들과 어울려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갈 때 가장 좋은 시를 썼다는 느낌이다. 일정한 시간과 노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설과는 본질적으로 달라, 시는 생각하고 형상화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막상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쓰는 시간이 길 필요는 없기 때문일 터이다. 생각하고 형상화하는 시간도 그렇다. 시간이 많다고 어떻게 줄곧 시만 생각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자칫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 시간에 치임으로써 오히려 바른 시를 쓰는 일과는 어긋나는 길로 나아갈 수도 있을 터이다. 가령 이런 경우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직장도 그만두었으니까 매일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써야 한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시를 쓴다,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아무거나 쓴다, 썼으니까 발표를 한다, 이래서 되지도 않은 시가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오는 잘못된 현상이 벌어지는 대목은 없는가. 나의 동년배 중 하나는 이래서 많은 시를 썼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가장 불우한 시인의 하나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본질적으로 시는 남과 더불어 사는 가운데서, 남들과 섞여 사는 속에서 제대로 씌어진다는 것이 내가 경험에서 얻은 결과다. 물론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서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남들과 같이 생각하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갈등한다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만 쓴다는 선택 속에는 이런 생각, 고민, 강등에서 벗어나겠다는 엘리트 주의가 있다. 나는 시를 쓰니까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선민의식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시는 일반적인 삶과는 무관하다는 그릇된 문학관도 부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가 가장 감동적인 경우는 남과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생각하는 것을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러나 남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힘있게 형상화했을 때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위해서 혹은 진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거나 일을 때려치운다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 룸펜 시인의 양산은 자칫 시를 생활과 동떨어진 관념적인 것으로 만들고, 시로부터 독자를 유리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좋은 시란 사람들과 함께 뒹굴고 함께 땀을 흘리고 함께 피와 눈물을 나누는 가운데 생산되는 것이지, 좋은 시를 써야겠다고 문을 쳐닫고 책상 앞에 도사리고 앉아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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