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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현승의 기독교 시 연구/박몽구

정영진 2010. 10. 6. 15:29
김현승의 기독교 시 연구
 

박몽구
(시인·한서대 강사)

1. 문제의 제기

커피를 각별히 좋아하여 호를 ‘다형(茶兄)’으로 지었던 김현승(1913∼1975)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데뷔 이래 1975년 타계할 때까지 모두 260여 편의 시를 6권의 시집으로 남겼다.1) 그의 이력에서 보듯이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줄곧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살았던 김현승에게는 ‘기독교 시인’이라든지, ‘고독의 시인’이라는 등의 수식어가 닉네임처럼 따라다녔다.2) 적잖은 선행 연구자들은 김현승의 시세계와 기독교의 밀접한 관련성을 인정하고 있으며,3) 실제로 그의 전생애에 걸쳐 기독교를 소재로 하거나, 내면화한 시들을 꾸준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김현승은 기독교 시인이면서도 단순히 종교를 소재로 삼지 않고, 먼저 시로써 육화(肉化)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한 데서 그 독특한 입지를 인정받고 있다. 김현승은 “하나의 문학작품이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가지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 작품에 필요한 소재를 처리하는 그 작자의 확고한 사상이 주축을 이루어야 한다.”4)고 천명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은 곧바로 시가 될 수 없으며, 내면화를 거쳐 시로 육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였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 일반화된 기독교 시관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생각이다. 박이도는 기독교 의식에 투철할 때 기독교 시인이라 부를 수 있으며, 성서적 사실에만 집착하지 않고, 체험의 종교로서 체질화된 시인을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5) 박두진은 기독교적인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어떻게 한 시인의 생존 감각과 더불어 순수한 직관을 통한 창조성을 확립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하였다.6) 신익호는 기독교 시는 신학보다 우리를 어떤 구체적 삶의 현장으로 이끌어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시적 기교에 앞서 진실한 신앙 체험이 밑받침이 되어야 하며, 기독교 정신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세속적 세계관과 성서적 신앙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 기독교 시의 본질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7) 이들의 기독교 시관은 얼마간의 편차는 있지만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시작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이 시적 주제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데 일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기독교 시는 기독교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시작품을 통해 구현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현승은 이 같은 기독교 내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기독교 문학은 적어도 소재주의에 바탕하지 않아야 한다고 천명한 점에서 독자성이 존재한다. 나아가 시집 《견고한 고독》 속의 시세계와 관련하여, “신과 신앙에 대한 변혁을 내용으로 한 관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것은 한 마디로 신을 잃은 고독이다.”8)고 고백한 데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 시를 신앙 밖으로까지 확대하였다는 데서 기독교 시의 새로운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본고에서는 이 같은 김현승의 시관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은 연구 문제를 설정하여 논의를 진행시킬까 한다.

첫째로 김현승의 시세계에서 시기별로 전개된 기독교 시의 양상은 어떠하였는가.
둘째로 김현승의 기독교 시를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시관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셋째로 김현승의 기독교 시가 한국 현대시에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인가.

2. 본론

1) 시세계의 구분

한 시인의 시세계는 대부분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기보다 시력의 축적과 함께 변화를 겪게 마련이지만, 김현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시인으로서 데뷔하였고 근대화가 한창 진행중이던 70년대 중반에 생애를 마감함에 따라 다양한 시세계의 전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김현승의 시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시세계의 분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동안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김현승의 시세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류해 왔다. 해방 전과 해방 후로 구분하는 2기 구분법이 있고,9) 초기시·중기시·후기시 등의 3기 구분법이 있으며,10) 시집 간행을 위주로 5기로 나누기도 한다.11) 본고에서는 이상의 견해들을 참고한 위에 김현승 시세계의 변모 양상과 역사적 시간 및 연령 등을 고려하는 한편, 그것들의 집결체라고 볼 수 있는 시집들을 중심으로 그의 시세계를 제1기, 제2기, 제3기, 제4기의 네 시기로 분류하여 고찰하였다. 그 구체적 분류는 다음과 같다.

우선 데뷔 이래 일제 강점기하의 시편들이 모아진 《새벽 교실》의 시세계를 제1기로 본다. 이 시기의 시들에는 민족적 로맨티시즘 아니면 민족적 센티멘털리즘을 주로 한, 자연미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짙게 풍기고 있다. 그 당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흉악한 인간-일인(日人)들과 같은 인간의 때가 묻어 있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향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12)

다음으로 여기에 해방 후 60년대 초까지 씌어진 《김현승 시초(詩抄)》와 《옹호자의 노래》의 집약된 시세계를 제2기로 분류하였다. 이 시기에는 김현승의 시들이 기독교적 특질을 분명히 하면서,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다의성을 매개로 한 폭넓은 상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데뷔 무렵의 시들과는 주제도 다르고, 낭만주의적 정서가 걷히면서 언어의 사용이 훨씬 절제되어 있는 시세계를 만날 수 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을 시적으로 성숙시킨 시기요, 확신에 찬 사회 참여의 언어를 구사한 시기이다.

제3기에 해당하는 시편들은 《견고한 고독》과 《절대고독》의 두 시집에 함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기에 김현승은 절대신앙으로 여기고 있던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인간적인 회의와 번민을 주제로 한 시들을 다수 보여준다. 기법 면에서도 원숙기에 접어들어 언어의 절제가 완결성을 보이는 등 전체적으로 김현승 시의 진수들이 집약되어 있는 시기이다.

미발표 시들과 유고들이 모아져 있는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에는 다시 신과의 합일을 통한 구도의 정신을 주로 담고 있는바 이 시기의 시들과 함께 《날개》에 모아져 있는 시편들이 집필된 시기를 제4기로 분류하였다. 죽음이라는 위기에 직면하여 새롭게 신을 발견하였고, 초월 의식으로 일상을 넘어 영원을 모색한 시기이다.

2) 도그마의 시학

김현승은 시단에 데뷔한 후 그는 1936년까지 2년여 동안 모두 17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들 시들은 김현승은 말년에 이르러 다시 기독교 신앙을 회복하였지만 도그마로서의 신앙이라기보다 죽음을 초월한 영원성을 믿게 되었다. 이 시기의 기독교 시들이 보여주는 정서는 일정하게 그의 그 같은 심경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 동안 단행본 시집에는 수록되지 않다가 1974년에 상재된 《김현승 시전집》에 《새벽 교실》이라는 소시집으로 모아진 바 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김현승의 시에서는 기독교 시라 할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가 본격적으로 기도교 시를 창작하기 시작한 것은 7년여의 절필 후 시작을 재개한 후 상재한 《김현승 시초》와 《옹호자의 노래》를 통해서였다. 즉 제2기의 시들부터 기독교 시가 보이기 시작한다.13) 식민지의 현실에서 벗어나, 어느덧 장년에 접어든 김현승은 압박감에서 벗어나 탄탄한 이미지로 구축된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

이 두 시집에 실린 시들에는 초기시들과는 분명히 획을 그을 만한 변화가 보인다. 우선 데뷔 무렵의 초기시들에 보이는 로맨티시즘이 말끔히 가셔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장시(長詩) 스타일이 지양되면서, 언어의 절제와 함축이 주조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런 외면적인 변화보다 그의 시세계는 심원한 변화를 겪게 된다. 무엇보다도 김현승의 시세계의 질적인 변화는 외적 현실에서 눈을 돌려 인간의 내면을 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구에 회자되는 명편 〈눈물〉 등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시들이 다수 창작되고 있음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그의 이런 시적 변모에 대하여, “나는 지금까지 등한히 하였던 나의 인간 내면 세계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너무도 외계적인 자연에만 치우친 나머지 인간의 내면적 자아는 몰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 외계로부터 내면의 세계로 관심을 돌렸다.”14)고 밝히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눈물〉은 6·25 전쟁을 맞아 광주로 낙향한 서정주가 목포시의 후원을 얻어 발간한 계간 시지 《시정신》에 실린 작품으로, 해방과 더불어 그 동안 등한시해 왔던 기독교 정신을 중심으로 한 내면 세계의 탐구와 상징적 이미지가 효과적으로 결합된 제2기 시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더러는/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들이라 하올제,/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눈물〉 전문

신에의 절대 귀의를 주제로 삼고 있는 시이다. 시인의 내면적 풍경은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이라는 데서 잘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제재인 ‘눈물’을 ‘작은 생명’, ‘나의 전체’,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 등으로 은유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눈물은 누구에게나 감동의 소산이요 또한 복종이라는 본래의 의미와 함께, 신에의 절대적 의지와 헌신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이 시는 시인에게 있어 기독교 신의 섭리가 사상(事象)을 판단하는 데 있어 으뜸가는 준거가 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익호는 “이 눈물은 자아의 마지막 보루로서 절대자 앞에 드릴 수 있는 인간 한계의 징표”15)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지 중심의 언어도 돋보이지만 가정적인 불행을 신에의 귀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정서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 점의 회의도 없이 신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데서 도그마의 시학을 실천하고 있는 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옹호자의 노래》에는 〈눈물〉과 정서를 함께 하는 시들이 적지 않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가을의 기도〉를 비롯, 〈이별에게〉, 〈육체〉, 〈내가 가난할 때〉, 〈사랑을 말함〉, 〈속죄양〉, 〈슬픔〉 등의 시를 만날 수 있다. 이 시기에 그가 얼마나 기독교에 경도되어 있었는가를 말해 준다고 하겠다.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謙虛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百合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의 기도(祈禱)〉 전문

〈가을의 기도〉는 김현승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제2기 시의 특질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가을이 불러일으키는 애수가 생애의 경건한 갈망과 연결됨으로써 관념의 서정적 육화를 성취한 한 전범이 되기 때문이다.16) 시인은 가을의 고독감 속에서 좀더 겸허해진 마음으로, 그 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참다운 가치를 추구하고, 더욱 경건한 삶을 준비하고자 한다.

이 시의 시상이 집중되어 있는 3연에서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는 구절에 보이듯, 세속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신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설 것을 바라고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신을 대면하고자 하는 서정적 자아의 소망을 밝히고 있다. 이하의 구절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위한 품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는 서정적 자아가 걸어온 삶의 길을 가리킨다.

굽이치는 바다는 서정적 자아가 살아오는 동안 직면하게 되는 온갖 고난과 수난의 삶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희로애락의 삶의 현장, 험난한 세파를 거쳐 그가 새로이 들어선 곳이 백합의 골짜기인 것이다. 신 앞에 서면 작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마련인 온갖 신난도 별것이 아니며, 신 앞에서는 백합 같은 아름다운 결실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삶의 희로애락을 거뜬히 이기고 신 앞에 서기를 바라는 서정적 자아의 의지가 곧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로 상징되어 있다.

    ① 먼 언덕에서는 구름과 놀다가도/돌아오면 머리맡에 등불을 사랑할 줄 아는/너이……//너이 우리 안에/오늘 밤은/다비데의 시편(詩篇)을 나직이 읽어 줄까.

    ―〈속죄양(贖罪羊)〉 부분

    ② 그것이 비록 병들고 썩어 버릴/육체의 꽃일지언정,//주여, 우리가 당신을 향하여 때로는 대결의 자세를/지을 수도 있는, 우리가 가진 최선의 작은 무기는/사랑이외다!

    ― 〈사랑을 말함〉 부분

    ③ 나의 육체와 찔레나무의 그늘을 만드신/당신은,/보이지 않으나 나에게는 아름다운 시인……. 당신의 그 사랑과/당신의 그 슬픔과/그 보이지 않는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에/나도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육체를 입혀/어루만지듯 나의 노래를 부릅니다.

    - 〈육체〉 부분

세 편의 시 모두 절대자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유한성과 그에 따르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①의 시에서는 일상의 삶과 신앙의 삶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먼 언덕’과 ‘구름’은 기독교적인 삶과 유리된 일상을 상징한다. 반면에 ‘등불’은 예수의 행적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속죄양’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퍼소나가 일상에서는 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지만 그런 무지에 반성을 던져주는 존재는 곧 예수인 것이며, 그를 통해 우리는 거듭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②의 시에서는 ‘병들고 썩어 버릴/육체’라고 노래함으로써 인간의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한편, 신의 섭리 안에서 베푸는 사랑만이 그것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③ 퍼소나의 삶은 자신의 의지 아닌 절대자에 의해서 주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육체’는 사람의 몸이 아니라 ‘절대자의 섭리를 구현하는 주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나도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육체를 입혀/어루만지듯 나의 노래를 부릅니다’는 대목은 시인의 노래가 절대자의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뜻으로 유추된다. 이들 시에서 보듯이 이 시기의 시들을 통해, 김현승은 절대자의 섭리와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한편, 자신의 시 또한 절대자의 미션을 옮겨 놓은 데 불과하다는 도그마의 시학을 펼치고 있다.

조태일은 〈푸라타나스〉, 〈5월의 환희〉 등 이 시기에 김현승이 노래하는 자연과 관련하여 동양적인 자연관과 성격을 달리하여, “김현승에게 있어 자연은 신의 은총이 현재화된 모습이며 인간과 같은 피조물로서의 자연이기 때문이다.”17)리고 지적한 바 있다. 김현승 자신도 이 시기에 씌어진 글을 통해 “종교의 세계는 인간의 어떤 국한된 일부의 세계가 아니라, 삶의 근원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세계라고 생각한다.”18)고 밝히고 있다. 기독교가 그의 삶에서 지극히 본질적인 것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소재의 측면이 아니라 이 시기에 기독교가 김현승에게 깊게 내면화되고 있음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기독교적인 삶을 반성적으로 본다거나 시인의 예지로 비판한 대목이 없다는 점에서, 도그마의 정서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비판의 시학

신에 대한 도그마의 정서를 보였던 김현승의 시들은 제3기에 들어서서 큰 변모를 보이게 된다. 김현승의 제3기 시세계는 두 권의 시집 《견고한 고독》(1968)과 《절대 고독》(1970)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두 시집이 출간된 시기는 다형이 50대를 맞아 마음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까지 일관되게 지속되어 왔던 기독 신앙을 중심으로 한 시세계가 인간 중심으로 크게 변모한다는 점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즉 절대자인 신에의 귀의를 노래하였던 명편인 〈가을의 기도〉의 정서가 이 시기에는 크게 변모를 보이고 있다.

김현승은 이전까지의 신실한 기독인으로서의 자세를 버리고, 심지어 자신을 무신론자로까지 지칭하기도 한다. 이른바 모태신앙이라고 하여 출생과 더불어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그때까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기계적이고 형식화된 신앙에 크게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사십대까지 청교도적으로 살아왔었다는 것을 밝히면서, “나의 나이 50대에 이르러, 나의 이러한 긍정적인 청교도 사상에는 큰 변혁이 일어났다.

간단히 말하여 무조건 부모에게 전습(傳襲)한 신앙에 대하여 나는 50을 넘어서야 회의를 일으키게 되고, 점점 부정적인 데로 기울어져 갔다. 흔히는 30대쯤에서 만나는 정신의 폭풍을 나는 때 늦게 50대에 와서야 맞게 되었다. (중략) 무엇보다 하느님은 유일신(唯一神)이 아닌 것 같다. 만일 유일신이라면 어찌하여 이 세상에는 다른 신을 믿는 유력한 종교가 따로이 있겠는가.”19)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김현승은 그의 제3기 시들을 쓸 무렵을 전후하여, 심각한 종교적 회의를 경험하게 된다. 절실한 이유로 인하여 그는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관심의 방향을 돌리게 되었고, 그의 시세계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결국 ‘고독’에 대한 심취로 나타났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김현승의 정신적 토양이 신앙에서 불신앙으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흔히 기독교 시인으로 지칭되는 획일주의적 선입견으로서의 신앙에서 탈피하여 기존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인 정신으로 시야를 넓혔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제3기 시에서 김현승에게서 고도의 언어 조탁, 정신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주제 및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사회 의식 등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한 시세계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떠날 것인가/남을 것인가.//나아가 화목할 것인가/쫓김을 당할 것인가.//어떻게 할 것인가/나는 네게로 흐르는가/너를 거슬러 내게로 오르는가.//두 손에 고삐를 잡을 것인가/품안에 안길 것인가.//허물을 지고 갈 것인가/허물을 묻을 것인가.//어떻게 할 것인가/알아야 할 것인가/살고 볼 것인가.//될 것인가/빛을 뿌릴 것인가.//간직할 것인가/바람을 일으킬 것인가.//하나인가/그 중의 하나인가.//어떻게 할 것인가/뛰어들 것인가/뛰어넘을 것인가.//파도가 될 것인가/가라앉아 진주의 눈이 될 것인가.//어떻게 할 것인가/끝장을 볼 것인가/죽을 때 죽을 것인가.//무덤에 들 것인가/무덤 밖에서 뒹굴 것인가.

    ― 〈제목(題目)〉 전문

김현승의 이전 시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 작품이다. 이전 시들이 대부분 견고한 이미지의 구축으로 씌어져 있다면, 이 시는 삶의 태도에 대해 자문(自問)들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 연의 “무덤에 들 것인가/무덤 밖에서 뒹굴 것인가.”에서 보이듯 현실의 치열한 현장을 두고 어떻게 삶의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결연한 고민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는 시이다. 이전까지 신에게 의지해 왔던 삶의 태도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보잘것없는 인간으로서 덮쳐오는 삶의 파도와 맞서 싸울 것인가 하는 고뇌에 찬 질문을 이 시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햄릿적인 고뇌의 표현이다.

홍기삼은 데뷔 때부터 60년대 초기까지의 김현승의 시세계가 기독교 정신과 모더니즘의 양면성에서 이해될 수 있다면, 데뷔 30년 만인 1964년에 시 〈제목(題目)〉 발표를 전후해서 김현승의 시는 뚜렷한 분수령을 이루게 된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도 신의 문제로부터 인간의 문제로, 즉물적인 감각의 세계로부터 현실의 장으로 넘어오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20)고 지적한다.

‘제목’은 삶의 궁극적 목표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 시의 매력의 하나인 산문적 진술보다 상징과 이미지를 통한 내면화를 돋보이게 하는 상징어이다. “파도가 될 것인가/가라앉아 진주의 눈이 될 것인가.” 하는 대목도 이 같은 정서의 한 갈래이다. 전통적인 상징적 의미로는 “파도가 보여주는 리듬, 혹은 리드미컬한 굽이침은 용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하얀 거품은 순수를 상징한다.”21) 이에서 유추해 보면 파도는 인간적인 지향과 몸부림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대비되는 자리에 ‘진주의 눈’이 자리한다. 이것은 소용돌이를 피해 바다 속에서 자라는 존재이므로 신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인간적인 삶과 기독교적인 삶의 갈등이 육화된 시이며, 이 같은 정서는 이 시기의 김현승 시 전반에 두루 걸쳐 있다.

라캉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김현승이 맞부딪치고 있는 절대자는 상징계의 부권(父權)에 해당한다. 상징계는 언어의 세계에 다름 아닌데, 인간은 이 단계에서 최초로 어머니와 분리되고 아버지라는 강력한 존재의 벽에 부딪친다. 성인의 경우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퇴행할 때 나르시시즘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상징계를 살면서 어떤 삶의 목표를 내세우지만 부계의 거역할 수 없는 힘에 부딪쳐 번번이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보면 김현승은 절대자에의 회의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지만, 라캉의 눈으로 본다면 그를 막아서는 부권적 권력을 뿌리치고 또 다른 진정한 절대자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김현승이 기독에게서 구하는 것은 도그마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삶에 질서를 주고 캄캄한 미래를 활짝 열어 보이는 진리의 빛이었다. 이런 상상계를 지나 정작 진리를 구하고자 했을 때 부권으로서의 신은 도그마가 되어 그를 가로막았고, 여기에서 벗어나 진리로서의 신을 찾고자 하는 부단한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이 곧 김현승의 고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읽을 때 김현승의 시는 기독교 시라는 한계를 벗어나, 보편적인 인간과 허망을 끊임없이 반복해 가는 존재인 인간의 심연에 닿을 수 있다고 본다.

최하림은 “알아야 할 것인가/살고 볼 것인가//필 것인가/빛을 뿌릴 것인가” 하는 질문이 심리주의적 경향을 띠고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이 시기에 김현승은 기독교에 대해 상당한 회의를 품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평가이다.22)

이 같은 김현승의 내적 고민을 형상화하고 있는 시어가 곧 ‘고독’이다. 김현승은 〈제목〉을 집필할 무렵을 전후하여,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는데, ‘고독’은 마음의 정처를 찾지 못한 그의 정신적 풍토를 반영하는 시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현승의 제3기 시세계는 흔히 고독의 시대로 알려져 있지만, 센티멘털한 고립감에 속하는 고독이 아니라, 인생과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한 단독자로서의 고독이요 보다 적극적으로 삶과 세계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고독이라고 본다.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사유하는 것은 내가 아닌 또 다른 자아인가?”23)라고 자크 라캉이 발언했듯이, 고정 관념을 버리고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새롭게 보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라캉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안에 타자(他者)를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초라한 자신을 부정하고 화려한 ‘나’를 꿈꾸면서 살아가지만, 그 꿈이 달성되는 순간 이내 허망해져서 저만치 달아나는 또 다른 타자를 쫓아 달려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24) 김현승의 진정한 자신을 붙들고자 하는 노력은 이 같은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한 것이다.

  •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단단하게 마른/흰 얼굴.//그늘에 빚지지 않고/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단 하나의 손발.//모든 신들의 거대한 正義 앞엔/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이 마른 떡을 하룻밤/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결정된 빛의 눈물,/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견고한 칼날― 발 딛지 않는/피와 살.//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더 휘지 않는/마를 대로 마른 木管樂器의 가을/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굳은 열매//쌉쓸한 滋養/에 스며드는/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 〈견고한 고독〉 전문

이 시는 시인이 밝히는 ‘고독’에 대한 내면적 정의라 할 만하다. 일차적으로는 제목과 본문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를 이루는 구조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고독’을 ‘흰 얼굴’, ‘단 하나의 손발’, ‘마른 떡’, ‘피와 살’, ‘굳은 열매’, ‘생명의 마지막 맛’ 등으로 은유하고 있다. 이것은 수사법상 병치 은유로 제시된 보조 관념들이 제각기 아주 거리가 먼 대상으로 선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문법을 무시한다거나 지나친 도치법을 구사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거리를 벌여 놓은 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줄곧 주창하는 낯설게 하기의 주된 수단이다. 은유의 특성으로 일컬어지는 한 사물의 의미를 다른 것으로 전이하는 것, 비상사성 속에서 상사성을 찾는 것,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기능25) 등이 잘 드러난 시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고독’을 시간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는 ‘굳은 열매’로 형상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곧 시간을 초월한 불변의 가치를 가리킨다고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생명의 마지막 잔’이라고 밝힘으로써, 위에서 밝힌 고독의 미덕을 자신의 삶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고 유추된다.

이처럼 김현승은 은유의 형식을 통하여 인간 자신, 이웃, 사회, 나아가서는 혼탁한 ‘나’와의 단절 의지의 형상화를 통해 고독이 지닌 다양한 면을 골고루 조명하는 한편, 각기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고독의 조소성을 완성하고 있다. 제재는 지극히 추상적이지만 관념과 추상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형상화하고자 애쓰는 집념을 읽을 수 있다.

“그늘에 빚지지 않고/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단 하나의 손발.//모든 신들의 거대한 正義 앞엔/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이 마른 떡을 하룻밤/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하는 대목은 그가 얼마나 신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그만의 독립된 인격을 확립하려 애쓰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창끝, 칼날, 굳은 열매 등은 시인이 지향하는 고독을 사물을 빌어 형상화한 이미지들이다.

문덕수는 이 시를 분석하면서 “반기독교적, 반인간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그의 고독은 반인간주의적이면서도 다른 한편 인간주의를 지향할 가능성을 내포한 모순 구조임을 알 수 있다.”26)라고 분석한 바 있지만, 기독교 신앙에의 회의를 품으면서 인간적 고뇌로 돌아서고자 했던 김현승 시의 정신적 풍경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의 견해로는 모순 구조로 보기보다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이라고 고독을 형상화한 데서 보이듯, 신에의 의지에서 벗어나 정신적 독립을 꾀하고자 하는 의지로 읽는 게 더 올바른 해석이 아닐까 한다.

이 시기의 김현승은 기독교 신앙을 직접적인 시의 소재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고독’ 등의 시어를 통하여 인간적인 가치와 기독교 가치 사이의 갈등을 잘 교직해 내고 있다. 결국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못지 않게 고독과의 치열한 대면을 담은 《견고한 고독》과 《절대 고독》 속의 시들 역시 또 다른 신앙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김재홍이 이 시기의 김현승의 시세계를 가리켜 “그가 괴로워한 것은 신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회의와 절망이며, 신을 떠난 인간으로서의 고독과 허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종교적 생명감과 인간적 현실감이 빚어내는 갈등과 화해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27)고 한 지적은 적절하다.

① 소와 말과/그처럼 착하고 둔한 이웃들과/함께 사는 우리집.//우리 집과 같은/베들레헴 어느 곳에서,/우리 집과 같이 가난한/마음과 마음의 따스한 꼴 위에서,//예수님은 나셨다.
― 〈크리스마스와 우리 집〉 부분

② 여기까지 오면/바위의 마른 이리떼 눈앞에 울부짖고/여기까지 오면/숲 속의 종소리도 멍들고 깨어져/더 갈 데가 없다.
― 〈아벨의 노래〉 부분

③ 돌을 주물러/떡을 만드는 거리./이 기적의 거리/그 떡을 먹고 돌이 된/만원버스의 시민들을 보라,/4월이 되면 개나리도 활짝 피는데…….

《견고한 고독》과 《절대 고독》 속에서 기독교를 소재로 한 시들을 골라 보았다. ①의 시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 지극히 민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삶 전체를 주관하는 조물주가 아니라 “소와 말과/그처럼 착하고 둔한 이웃들”과 같은 존재이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우리 집에 함께 사는 식구이다. 이것은 김현승이 도그마적인 신앙을 버리고 지상의 삶 속에서 예수의 삶을 재현하고자 부심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②의 시에서는 기독교의 절대자가 선의 수호자가 아님을 노래하고 있다. 아벨은 카인과 대별되어 착하고 부지런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현실의 삶에서 언제나 낙오되고 버림받는 것이 인간사의 법칙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버림받은 아벨의 최후의 친구이자 구원자는 절대자요 예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현승은 “이리떼 눈앞에 울부짖고/숲 속의 종소리도 멍들고 깨어져/더 갈 데가 없다.”고 노래함으로써 그 같은 기독교의 복음이 하방을 딛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는 셈이다. ③의 시는 4월 혁명 8주년에 즈음하여 〈동아일보〉에 발표되었다. 무구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딛고 열린 희망의 세상이, 8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거꾸로 바뀐 현실을 소재로 씌어진 시이다. 전체적으로 알레고리의 수법이 동원되고 있으면서, 모더니즘 시의 특질인 역설과 아이러니가 적절하게 구사된 시이다.

이 시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돌’과 ‘떡’이라는 상징어의 대조법적 사용이다. 4월 혁명을 시적 소재로 담았으니만큼 피라거니 희생이라거니 하는 시어들이 당연히 동원되었을 법하건만, 혁명을 가리켜 시인은 ‘돌을 주물러 떡을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상징과 환유가 어울린 이 구절은, 막강한 총칼 앞에 돌멩이로 맞선 젊은이들을 연상시키는 중의법(重義法)의 구사로 신선한 감각과 함께 뭉클한 느낌을 자아낸다. 아울러 떡이 돌로 변해 버렸다고 표현함으로써 절대자의 섭리에 대한 회의를 내비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기의 시들은 기독교 정신과 합리적 정신 사이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신앙의 세계에서 벗어나 합리적 정신이 발현된 인간 중심 세계로의 이행을 의미한다.28) 나아가 이 시기의 김현승이 노래하고 있는 기독교 시들은 도그마를 벗어난 비판의 시학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고정 관념을 벗어나 온힘을 다해 인간으로서의 지향점을 추구하는 주제들과 명징한 이미지가 어울려 김현승 시의 높은 경지를 이룩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이 시기의 김현승의 시들은 기독교 시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백미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4) 초월의 시학

1973년 지병인 고혈압으로 쓰러진 바 있는 김현승은 이후 신에의 회의를 접고, 독실한 신앙인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1975년 4월 11일 숭전대학의 채플 시간에 기도하던 중 쓰러지고 마는데,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에는 김현승 말년의 정신적인 고뇌와 죽음에 직면한 한 인간이 신 앞에 솔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제3기의 시편들이 기독교의 유일신에 대한 회의에 바탕해 있다면, 이 시기의 시들은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 시인이 신과의 관계 회복을 간구하는 목소리에 바탕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제4기에 해당하는 시편들로는 1974년(관동출판사)과 1985년(시인사)에서 출간한 김현승 시전집 속의 《날개》편 속의 54편의 시와 유고시집 《마지막 지상에서》의 제1부에 수록된 25편의 시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 제4기의 시편들은 언뜻 보면 제3기의 시들에 보이는 열기도 없을 뿐더러 한 지식인의 말년의 모습이 쓸쓸한 풍경처럼 비치기도 한다. 젊은날의 김현승에게 보이던 삶에 대한 고뇌와 뜨거움은 사라진 것같이 평범함만 남은 듯 보인다.

그는 “나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어느 겨울에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나의 느낌으로는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 만인가, 얼마 만에 나는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살아나게 되었다. 죽은 가운데서 과연 누가 나를 살렸을까? 나는 확신한다! 그분은 나의 하느님이시다.”29)라고 고백한다. 기독교 신앙인으로서는 자각을 느끼게 하는 말들이지만, 제3기 시에서의 치열한 인간 의지를 본 독자들로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솔직히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고백이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것들을 한 꺼풀 걷어내면 다른 시각을 얻어낼 수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가 다시 청교도적인 신앙을 회복했다는 점이다. 이전 시기의 고독과 소외 의식이 이 시기에는 종교적 연민의 세계로 전환되었다. 제3기의 시들에 두드러졌던 현실과 이상의 괴리, 신과 인간의 메울 수 없을 것 같던 거리감은 이 시기에는 신과의 화해를 통하여 해소된다. 시인은 세상의 섭리에 겸손해짐으로써 달관의 경지에 도달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그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하여 약해진 것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경지를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정신의 영토에 다다랐다는 말이다. 그것은 예전처럼 신에의 무조건적인 복종의 세계도 아니며, 또한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물질의 세계도 아니었다. 그것은 양자를 아우르는 가운데, 만물에 대한 사랑이라는 열린 세계로 나타났다.

    이 어둠이 내게 와서/요나의 고기 속에 나를 가둔다./새 아침 낯선 눈부신 땅에/나를 배앝으려고.//이 어둠이 내게 와서/나의 눈을 가리운다./지금껏 보이지 않던 곳을/더 멀리 보게 하려고,/들리지 않던 소리를/더 멀리 듣게 하려고.//이 어둠이 내게 와서/더 깊고 부드러운 품안으로/나를 안아 준다./이 품속에서 나의 말은/더 달콤한 숨소리로 변하고/나의 사랑은 더 두근거리는/허파가 된다./이 어둠이 내게 와서/밝음으론 밝음으론 볼 수 없던/나의 눈을 비로소 뜨게 한다!//마치 까아만 비로도 방석 안에서/차갑게 반짝이는 異國의 寶石처럼/마치 고요한 바닷 진흙 속에서/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 〈이 어둠이 내게 와서〉 전문

이 시는 김현승이 1973년 3월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된 후, 그해 6월에 《신동아》에 발표한 시이다. 그는 2월에 숭전대의 문과대학장으로 발령받아 일하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시어 ‘어둠’이 암유(暗喩)하듯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큰 고비를 겪은 셈이다.

하지만 이 시의 어느 구석에도 절망의 분위기나 뭔가 절대자의 처사에 분개해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시인은 그의 삶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었던 어둠을 가리켜, “이 어둠이 내게 와서/더 깊고 부드러운 품안으로/나를 안아 준다./이 품속에서 나의 말은/더 달콤한 숨소리로 변하고/나의 사랑은 더 두근거리는/허파가 된다.”고 말한다. 김현승은 어둠의 차가운 얼굴을 따스한 품으로 느끼고 있다.

첫연에 등장하는 요나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이다.30) 김현승은 자신이 직면한 고난을 ‘요나의 고기’로 상정하면서 그가 당하는 고난을 가리켜 “새 아침 낯선 눈부신 땅에/나를 배앝으려고.” 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가 한때 등을 돌렸던 기독과 화해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는 다시 오만을 버리고 겸손을 말끔하게 회복하고 있다. 이렇듯 말년의 김현승은 뜻하지 않은 병마를 맞은 다음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기독과의 불화를 청산하고 신앙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결과 제3기 시에서 보여 주었던 개인의 자존을 앞세워 고독에 침잠하였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것을 거부하며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던 김현승은 뜻하지 않은 병을 계기로 인간의 유한성을 깨달으면서 사람살이에는 신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김현승이 단순히 기독과의 불화를 청산했다는 말만은 아니다. 그의 시세계가 이전 같지 않게 넉넉해졌을 뿐더러, 작은 일상사를 훌훌 털고 보다 영원한 것을 노래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는 말이다.

    산까마귀/긴 울음을 남기고/해진 지평선을 넘어간다//사방은 고요하다!/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나의 넋이여,/그 나라의 무덤은/평안한가.

    ― 〈마지막 지상에서〉 전문

몇 마디의 간결한 말로 전편이 하나의 알레고리를 이루고 있는 시이다. 경구가 읽는 이의 가슴에 서늘하게 닿는 느낌이다. 이 시의 경우에도 ‘산까마귀’, ‘무덤’ 등의 시어는 상징어이다.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인 1975년 2월에 발표된 작품이고 보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어두움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성찰을 내면화하고 있으면서 모름지기 시인 스스로 살아 있는 정신으로 지낸 하루인가를 되묻고 있다. 그것은 곧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에게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문학상징사전》에 보면 “까마귀의 상징적 의미는 시초라는 관념과 관계된다. 또한 창조적 능력과 정신적 힘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인간이 좀처럼 닿을 수 없는 우주적 의미를 상징하기도 했다. 동양의 백거이의 시에서는 고독을 상징하기도 하고, 우리 나라 문인들의 경우에는 흉한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31)고 되어 있다. 이 시의 경우에도 이런 상징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김현승의 까마귀도 이런 새의 상징을 고려해 넣을 때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위의 시에 보이는 ‘무덤’은 죽음이라기보다 시인의 영혼이 깃들 장소를 가리키며, 이때 산까마귀는 그 고고한 정신의 힘으로 하여 인간의 유한한 수명을 넘어 새로운 경지를 여는 이미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내게 행복이 온다면/나는 그에게 감사하고,/내게 불행히 와도/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한번은 밖에서 오고/한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 〈지각(知覺)―행복의 얼굴〉 부분

② 나의 희망,/어두운 땅 속에 묻히면/황금이 되어/불같은 손을 기다리고,//나의 희망/깜깜한 하늘에 갇히면/별이 되어/먼 언덕 위에서 빛난다
― 〈희망〉 부분

③ 이 어둠이 내게 와서/까아만 비로도 상자 속에 안긴/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이,/그 한복판에 빛내 주도다 빛내 주도다./눈뜨는 나의 영혼을…….
― 〈이 어둠이 내게 와서〉 부분

그의 죽음을 앞두고 쓴 시들이다. 하지만 이들 시에는 육체적 종말을 두려워하거나 지상의 삶에 집착을 보이고 있는 구절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①의 시에서 보듯이 시인은 ‘밖’으로 상징되는 육체와 현실의 행불행에 마음을 쓰기보다 ‘안에서 오는 행복’을 선별할 줄 안다. 그것은 시인의 눈이 현실의 이해관계를 초월해 있다는 암시이다. ②의 시를 통해서 시인은 자신의 위치를 ‘땅 속’과 ‘하늘’에 설정하고 있다.

그곳은 곧 육체적 죽음 뒤에 맞이하는 공간이며 현세적 삶의 마감을 상징한다. 하지만 시인은 거기에 ‘불’과 ‘별’이 있다고 말한다. 시인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지만, 그것을 생의 끝으로 보지 않고 더 큰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내세관과도 연결되는 것이지만, 육체적 생의 마감은 삶의 끝이 아니며 연장된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③의 시에서는 현세의 삶에 대한 성찰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어둠’은 죽음 또는 병마, 세상살이의 버거움 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좌절로 연결시키기보다 “까아만 비로도 상자 속에 안긴/아름다운 보석”의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즉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존재라고 밝힘으로서, 현세의 삶을 억압하고 위축시키는 것들이 그에게 더욱 힘이 되고 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내비치고 있다.

이처럼 김현승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 육체적인 질병으로 인하여 삶의 큰 좌절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좌절하지 않고 사랑을 무기로 하여 일어선다. 그는 이 과정에서 신의 무한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며, 따라서 돈독한 신앙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신의 무한한 사랑에 의지하려고만 들지 않고 이타적인 사랑이 참사랑임을 깨닫는다. 그는 말년에 다수의 기독교 정서를 지닌 시편들을 통해 죽음을 넘어선 초월의 경지를 깔끔하게 형상화해 내고 있다. 말년에 이르러 다시 기독교 신앙을 회복하였지만 도그마로서의 신앙이라기보다 죽음을 초월한 영원성으로 발전되었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조태일은 기독교의 절대자의 회의에서 시작되어 말기의 초월 의식에 이르는 과정을 “인간적 삶의 완성적 측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인간의 인간다움을 자체 내에 포함한 매우 풍부하고도 구체적인 절대정신의 자기 회귀에 해당한다.”32)고 평가하고 있고, 이인복은 “1974년 이후에 발표된 시들은 오랜 방황 끝에 차분하게 안정된 신앙의 자세와 아름다운 인성(人性)의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33)고 평가하고 있다. 제4기의 시들이 신과 인간의 합일을 통한 새로운 초월의 세계임을 지적하고 있는 말들이다. 필자 역시 이에 공감하는 한편, 초월 의식을 기독교 절대신에의 의지를 선언하는 방식이 아닌, 응축된 이미지와 내면적 성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한국 기독교 시에 한 경지를 내딛었음을 덧붙여 둔다.

3. 맺는 말

이제까지 기독교 시들을 중심으로 김현승의 시세계를 검토해 보았다. 40여 년에 이르는 시작의 궤적만큼이나 그의 시세계가 다양하다는 데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한편으로 일생을 통해 기독교인으로 지낸 시인이면서도, 기독교 신앙의 전파를 중심으로 한 소극적 기독교 시관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그 영역을 넓혀가는 데 부심한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 시인으로서의 김현승의 시적 궤적은 축자적(逐字的)으로 보면 신앙의 흔들림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고독, 즉 깊은 고뇌를 통해 진정한 신앙에 도달하려는 인간적인 몸부림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신앙과 고독의 변증법적 만남을 진정한 문학이라는 그릇으로 담아내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여기에 그의 기독교 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여진다. 본 연구에서는 이 같은 김현승의 기독교 시인으로서의 궤적을 탐구해 가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로 김현승은 기독교적인 것들을 단순히 소재로 삼지 않고 내면화하는 데 충실한 시인이라는 점이다. 제2기의 시들에서는 얼마간 이런 흔적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육화된 정서를 시로 담아내는 데 주력하였다.
둘째로 그는 한국 현대 기독교 시인들 가운데서는 다양한 시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제2기의 도그마의 시학에서 고독을 중심으로 한 인간 중심의 비판의 시학으로, 말년에는 죽음을 넘어서 멀리 내다보는 초월의 시학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도그마에 기우는 체질이 일반화된 한국의 기독교 시에 새로운 돌파구를 연 것으로 평가된다. 이것은 모순이라기보다 진실된 자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지난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일관성을 갖는다고 평가된다.

셋째로 그 자신 기독교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기독교 문학에 대한 대단히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형식상 기독교적인 것을 채용한 것이 곧 기독교 문학이 될 수 없으며, 기법과 내용의 구체화를 통한 육화를 거쳐서만이 비로소 기독교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현승의 주장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넷째로 이 같은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김현승은 한국 현대시문학사상 기독교 시를 분명하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영역을 확보한 시인임을 알 수 있었다. 형식상 기독교적인 것을 채용한 것이 곧 기독교 문학이 될 수 없으며, 기법과 내용의 구체화를 통한 육화를 거쳐서만이 비로소 기독교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현승의 주장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독교 시인으로서의 김현승의 이 같은 시적 성과가 한국 현대시사에 계승 발전되어, 한국 기독교 시가 한층 그 폭과 깊이를 더하기 바라면서 논의를 마친다. ■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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