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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무지/T.S Eliot
정영진
2010. 10. 6. 15:28
T.S. Eliot (1888 ~ 1965). The Waste Land (황무지) 1922
어쩌다 사월은 한 백인 시인의 시 한편으로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다.
사월을 노래한 시인이 어찌 그 이뿐이었겠냐만 엘리어트의 서사시 <황무지(荒蕪地) The Wasteland)가 노래한 사월의
이미지는 전후 10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도 이 땅에선 화석으로 살아 있다.
황무지가 1차 세계대전 뒤 전쟁을 낳은 현대문명을 비판한 작품이고,
사월을 <잔인한 달>로 노래한 까닭은 ‘아무도 싹을 틔우길 원치 않는데 자연은 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따위야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22년 발표된 장편 서사시는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잠든 뿌리를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로 시작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 구절은 초서의 '켄터버리의 이야기(The Canterbury Tale)'의 '희망적인 4월'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의미는 시인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에 따른 심정의 고백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그러한 시인의 의식이 다름아닌
코메의 무녀나,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 있는 어부왕의 심정과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생명의 부활을 약속받은 이 찬란한 봄의 계절에, 죽은 목숨만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것은 잔인한 운명일 수밖에 없다.
가사(假死) 상태를 원하는 현대의 주민들에게는 모든 것을 일깨우는 사월이 가장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역설적인 표현은 '저주받은 축복'이기도 하다.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므로 '축복'의 계절이지만, 작고 연약한 씨앗이 겨울의 단단한 땅을 밟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저주'이기도 하다. 시인 엘리엇은 20세기 서구 문명의
황폐화를 겨울의 황무지에 비유한 다음, 이러한 황무지에 희망의 씨앗을 싹트게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껍질을
뚫고 나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생명이 약동하는 4월이 가장 잔인한 것은 죽음과 같은 삶을 강요당하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역설이 많은 공감을 얻게 된 계기는 아마도 4.19일 것이다. 수많은 젊음이 무고한 피를 뿌려야 했다는 점에서 1960년의 4월은 정말 잔인했다.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 왜 고독해야하는 것인가를"(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중) 고민하던 시절 얘기다. 그로부터 두 세대를 건넌 2007년 4월은 더이상 잔인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빛나는 꿈의 계절이어야 맞다.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되고 있는데, 거기에 관해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4월은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4월은 재생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재생을 요구함으로써 또한 잔인하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원래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不在), 생산이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에 대해 쓴 시라고 한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전후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했다고 한다.
황무지(荒蕪地)
쿠메의 한 무녀(巫女)가 독 안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그 때 아이들이 "무녀, 당신은 무엇이 소원이오?"라고 묻자, 그녀는 "난 죽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 한층 훌륭한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1. 주검의 매장(埋葬)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여름은 소낙비를 몰로 슈타른베르가제를 건너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해가 나자 공원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 가량 지껄였다.
내가 러시아 사람이라고요. 천만에 나는 리투아니아 출신이지만 순수한 독일인이에요.
어렸을 때, 종형(從兄) 태공(太公) 댁에 유숙했었는데
종형은 나를 썰매에 태워 데리고 나간 일이 있었죠.
난 무서웠어요. 마리, 마리,
꼭 붙들어, 라고 그는 말했어요. 그리고 미끄러져 내려갔지요.
산에서는 마음이 편하지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에는 남쪽으로 갑니다.
이 엉켜 붙은 뿌리들은 무엇인가? 돌더미 쓰레기 속에서
무슨 가지가 자란단 말인가? 인간의 아들이여,
너희들은 말할 수 없고, 추측할 수도 없어, 다만
깨진 영상의 무더기만을 아느니라, 거기에 태양이 내리쬐고
죽은 나무 밑엔 그늘이 없고, 귀뚜라미의 위안도 없고
메마른 돌 틈엔 물소리 하나 없다. 다만
이 붉은 바위 밑에만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 밑으로 들어오라),
그러면 네 너에게 보여 주마,
아침에 네 뒤를 성큼성큼 따르던 너의 그림자도 아니고,
저녁 때에 네 앞에 솟아서 너를 맞이하는 그 그림자와도 다른 것을,
한 줌 흙 속의 공포(恐怖)를 보여 주마.
바람은 가볍게
고국으로 부는데
아일랜드의 우리 님
그대 어디서 머뭇거리느뇨
"일년 전 당신은 나에게 히야신스를 주셨지.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히야신스 소녀라고 불렀답니다."
― 그러나 그 때 당신이 꽃을 한 아름 안고 이슬에 젖은 머리로
밤 늦게 히야신스 정원에서 나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이 안 나왔고 눈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몰랐었다.
다만 빛의 한복판, 그 정적을 들여다 보았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바다는 황량하고 님은 없네. <후략>
요점 정리
작자 : 엘리엇(T. S. Eliot )/ 이창배 옮김
갈래 : 자유시. 장시(長詩)
율격 : 내재율
성격 : 주지적. 문명 비판적. 상징적]
심상 : 시각적
제재 : 고대의 성배(聖杯) 전설
주제 : 현대 문명의 비인간성
구성 : 전체 5부
전편 433행으로
1부 〈죽은 자의 매장 The Burial of the Dead〉,
2부 〈체스 게임 A Game of Chess〉,
3부 〈불의 설교 The Fire Sermon〉,
4부 〈의사 Death by Water〉,
5부 〈우뢰가 말한 것 What the Thunder Said〉
(여기에 실은 것은 제 1부의 앞부분 두 연이다.)
특징 :
단편들이 동시에 병치되어 있고, 일종의 독백 형식을 갖춘 시로 상징적, 비유적, 신화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정신적 혼미와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의식의 흐름'의 방법이 쓰였으며,
〈성서〉·〈우파니샤드〉를 비롯해 단테·보들레르·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이 곳곳에 인용되어 있다. 이 시의 구성은 J. 웨스턴의 저서 〈제식에서 로맨스로 From Ritual to Romance〉 중의 성배전설과 J. G.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의의 :
J. 조이스의 〈율리시스 Ulysses〉(1922)와 함께 영국 현대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T.S. Eliot (1888 ~ 1965)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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