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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 줄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김영남

정영진 2010. 10. 6. 15:20
 


  그 줄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김영남

 

 

 

제 몸통보다 더 큰

먹이를 물고 여섯 발로 뛰는 개미들.

그들 뒤에는 아름다운 줄이 꼬아져 있다.

앞을 향해 부단히 움직이고

가로막으면 금방 진로를 바꾸는 줄.

끝까지 따라가 보면

외진 곳에 집이 있고

그 속에 꿈틀거리는 새끼들이 눈부시다.

 

야, 줄은 집에서 꼬아내는구나.

스스로 움직이고 진로를 바꾸는 줄은

결국 집 속의 새끼들이 꼬아내고 내 발목에도 묶여져 있는구나.

그 줄을 밟고 있으니

갑자기 다리 근육이 씰룩거리고 손까지 마비가 온다.

 

몸 속에서 꿈틀하는 줄.

나의 아이들이 나의 발목을, 나는 아버지의 발목을, 내 아버지는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발목을....

이렇게 묶어 꼬아낸 김氏 집의 줄도

저처럼 훌륭할까?

발목이 묶여 있는데도

지금 내 몸은 왜 이렇게 자유로울까?

 

생각하며 따라가 본 개미집

그들 뒤에는

폐가(廢家)를 기와집으로 가꾼 아름다운 줄이 꼬아져 있다.

 


 

                                                 
                                                      김영남 시인 (왼쪽)

1957 전남 장흥군 대덕읍 분토리 출생 
 광주고등학교 졸업 
 1985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97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정동진역> 당선으로 등단 
 1998 시집 '정동진역(민음사)'을 냄.

 1998   윤동주 문학상(우수상)수상 
  2001 시집 '모슬포 사랑'(문학동네)을 냄  
  2002   중앙문학상 수상 

  2004   문학과 창작 작품상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기획조정실에 근무.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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