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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풍장 1/황동규

정영진 2010. 10. 6. 15:18
 

풍장 1 /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황동규 시인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와 동대학원 영문과를 졸업, 영국 에딘버러 대학과 미국 아이오와 대학 및 뉴욕 대학에서 수학. 교환교수. 『비가』 『어떤 개인 날』 『풍장』 『외계인』 등 10권의 시집, 그리고 『사랑의 뿌리』 『나의 시의 빛과 그늘』 산문잡,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 1998년 『황동규 시전집 1, 2.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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