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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절정을 복사하다/이화은

정영진 2010. 10. 6. 15:14

절정을 복사하다 

 

 

 이화은


 
예술의 전당에서 이 만원 주고
클림트의 키쓰 복사본을 사 왔다
트윈 침대 만한 북쪽 한 벽에
햇솜 같은 할로겐 불빛을 짙게 깔고
그들을 눕혔다 이건 아니다
너무 진부했다
매양 여자가 아래에 깔리는 체위
뒤집어 여자를 위로 올렸다
마침 티브이에서 못 생긴 여자가
여성 상위에 대해 침을 튀기고 있다
못생길 수록 위로 올라가고 싶어한다고
이 시각부터 그렇게들 생각한다면
고즈넉이 남자의 입술을 먹고 있는
이 여자는 너무 아름답다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불빛이 주르르 발 아래로 흘러내린다
나는 체위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 입맞춤이 끝나고 그들은 눕던가
헤어져 돌아가던가 할 것이다
한국 영화처럼
끝까지 다 말해 버리지 말자 하지만
이 숨막히는 정적
한순간만은 다시 복사해
내 가장 숨막히는 시간 속에
걸어두고 싶다

 

시집 - 절정을 복사하다

사진 - <어진다움>님의 블로그에서
 
  
 

 

이화은 시인

경북 경산 진량에서 태어나 인천교육대학교 및 동국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 1991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1997년부터 육군사관학교에서 현대시 창작 강의, <시와시학> 부설 시 전문 포털 사이트 '포엠토피아' 편집주간. 시집「이 시대의 이별법」「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절정을 복사하다> 등


출처 : 詩香의 숲 綵雲齋[4대강 패륜 STOP]
글쓴이 : 無影/박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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