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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이론과 실제/詩論과 詩學 - 이향아

정영진 2011. 11. 13. 01:13

제1장 詩와 詩論 

1. 詩論과 詩學


강사/이향아


"詩의 理論은 詩를 창작하는 데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다시 말해서
"우리는 詩의 이론을 학습함으로써 시를 창작하는 일에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시의 이론을 알고 창작한 詩는 詩의 이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창작한 詩와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질문을 가정하였을 때, "시의 이론은 시의 실제에 이렇게 기여한다"라고 명쾌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을까? 혹 제시할 만한 명쾌한 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확고부동한 정답으로 고정될 수 있을까?
詩는 본질적으로 이론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詩가 이론을 초월하여 오히려 모순과 갈등의 구조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 할 때, 詩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해명하는 작업이 때로는 부질없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확고부동한 논리는 대상을 부분적 혹은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단순한 질서에나 있을 수 있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파악하려고 하는 시에서는 오히려 모순과 갈등의 구조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詩論을 집대성한 著書인 {詩學(Poetics)}을 펴낸 이후 유구한 세월을,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詩論의 천착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인간으로서의 본능인 동시에, 인간적 장점이기도 한 "知識에 대한 욕구"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 인간은 기존의 사실 혹은 존재에 대하여 깊이 파악하고 탐색하고 考究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욕망이 "詩論" 혹은 "詩學"이라는 새 영역을 마련해 냈을 것이다.
詩學은 詩論을 학문적인 명칭으로 개칭한 것이며, 한 마디로 詩에 대한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이론을 말한다. 詩에 대한 이론이라는 의미에서 詩論이라는 명칭으로의 대체가 가능하다고 하겠다. 굳이 이 두 가지를 구별하려고 한다면 과거의 용례로 미루어 구별할 수는 있다.

즉 詩論은 근본적으로는 형이상학의 한 분야이지만 학문으로서의 형태보다는 기술론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詩論은 詩의 한 유파, 혹은 한 詩人이 흔히 그 자신의 詩를 합리화하려는 과정에서 원용하는 이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말하면 어느 詩의 流派나, 혹은 한 詩人이 자신이 理想으로 삼고 있는 假象의 詩적 체험이나 형태, 정서와 효과 등을 체계화할 때 이 詩論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예를들면 "정지용의 詩論에 의하면"이라든지 "리차즈의 詩論으로 보면", "나의 詩論을 피력하자면"이라는 말이 여기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詩學"은 조직된 방법과 체계를 갖춘 詩의 학문, 詩의 과학이라는 뜻을 강하게 시사한다. 詩學은 詩論보다 객관성을 가진 것이며, 지식을 기술하고 논하는 학문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객관적 척도와 지식으로 詩에 접근하는 방법이 과연 詩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인가"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詩는 학문이라기보다는 형이상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詩에서 객관적 타당성을 찾는 방법보다는 주관적이고 다의적인 사물로의 접근 방법이 더 유력하다고 할 때, 지식으로가 아닌 지혜로서 詩를 이해하는 길이 더 빠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詩뿐만이 아니다. 같은 학문 중에서도 철학이나 종교학은 詩처럼 지식이 아닌 지혜의 한계 안에 두는 것이 그를 파악하는 데에 유리할 것이다.
詩를 과학의 대상으로서 취급하려고 하여도, 그것은 다른 학문에서처럼 용이하고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우선 우리 눈 앞에 어른거리는 뭇 형이상학적 환영--혹은 詩적 연상과 파급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 을 물리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사실과는 다르게 유리되고 왜곡된 사실, 혼란된 사물의 인식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필자는 학문으로서의 詩의 이론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詩學이라는 명칭을 보류하고 詩論이라는 명칭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것은 詩를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고, 개인적이며 주관적 산물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어 고찰하고 싶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詩(文學)는 과학에서처럼 직선이나 평면의 질서로 파악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순환하는 총체적인 원의 세계로 인식해야 한다.

이 책에서 <詩論>이라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詩學>이 담당할 수 있는 범주까지를 포괄한 것이다. "詩는 무엇인가?", "詩는 다른 문학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詩의 발생과 발전은 인간 정서가 추구하는 목표와 어떻게 제휴하고 있는가? 등에 대한 포괄적 정의를 내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詩의 형식, 내용 및 표현상의 기교를 따라 詩의 구체적 성격을 고찰하기도 하며, 그밖에 독자에게 주는 효과와 의의, 詩의 역사와 기원 등, 詩 全般에 대한 것에 대하여 사색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詩論(poetics-詩學)을 정의하여 "詩 그 자체와, 詩의 종류들과 그 각 종류의 독특한 기능의 문제, 그리고 작품이 아름다워지기 위하여서 플롯을 어떻게 형성해야 하며 어떤 부분으로, 얼마나 많은 부분으로 플롯을 형성해야 하는지, 기타 등등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라고 하였다.

유럽의 詩論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模倣論과 效用論의 체계이다. 모방론은 모든 서양 詩論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사물, 특히 인간 행위의 모방이며 생활의 반영이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재료로 한 재창조다"라는 주장들은 다 모방론에 속한 것이다. 반면에 효용론은 "詩는 쾌락이다", "詩는 교훈을 준다", "詩는 즐겁게 유익한 말을 들려 준다" 등등 詩의 효용성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세워 놓고 있다.

18세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詩論의 중요한 과제는 詩 창작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詩의 법칙을 정리하여 조목화하는 일을 중시하였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詩에 대한 다소 추상적인 정의, 논리성을 초월한 주장, 혹은 선언이 비등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詩에 대한 철학적이며 사변적 이론이 출현하여 예술철학의 발전을 일층 활발하게 도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存在로서의 詩"에 대한 이론이 학술적 체계를 갖춘 것도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詩를 文化史의 일부로 취급하여 근대적인 文學史를 성립시킨 것은 실증주의가 발전한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문학사가 詩論學의 새로운 분야로 부상한 이후, 역사학 이외의 심리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지리학, 생물학 등 주변 학문이 보조과학으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보조과학의 그 방법과 원리를 詩論에서 많이 원용하기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현대시학의 한 특징이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詩를 좋아한다", 혹은 "詩를 알고 있다"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詩를 쓸 줄 안다, 혹은 詩를 잘 쓴다는 의미가 그 하나요, 詩를 읽기 좋아한다, 혹은 詩를 제대로 감상할 능력이 있다라는 의미가 다른 하나다. 그러나 이 두 의미는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며 유기적인 관계에서 이해되고 보완될 수 있는 것이므로, 詩에 대한 이해나 애정은 詩 창작 능력과 함께 감상의 능력까지도 포함한다고 하겠다.

詩의 이론과, 창작된 실제 작품과의 관계는 詩論과 문예비평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가깝고 미묘하다. 시인이, 정립된 詩論의 기반 위에서 창작을 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이 詩에 대한 이론을 명확히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창작에 원용하려고 할 경우 그의 詩는 자연히 논리성을 중시하게 된 나머지 주지주의적인 詩를 쓰기 쉽다. 반대로 詩論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거나 초월했을 경우, 그 시인은 오히려 더 쉽게 자신의 직관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영감을 받아, 혹은 천재성을 발휘하여 보다 좋은 詩를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한 시인이 상정하는 원리, 완전한 詩를 이루도록 해 주는 詩의 원리가 그 시인의 詩論 혹은 시학이 된다. 한 시인의 주장이 담긴 발언이나 詩 작품에서 그 시인의 詩論을 끌어내는 일은 현대시학 이론가의 중요한 임무이다. 각 시인의 시학적 근거를 알아내고 그런 것들을 종합하여 한 시대 또는 한 나라 문학의 시학을 정립한다면 더 폭 넓은 본격적 시의 학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약력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여 전북 군산에서 성장하였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문학]지를 통하여 <가을은>, <설경>, <찻잔> 등의 작품이 추천됨으로 문단등단하였다.
저서로는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이별> , <당신의 피리를 삼으소서>, <오래된 슬픔 하나> 등 13권, 시선집 4권이 있으며 수필집 <하얀 장미의 아침>, <쓸쓸함을 위하여> 등 11권, 수필선집 4권이 있다.
이밖에 문학이론서로 <문학의 이론>, <창작의 아름다움>, <한국시, 한국시인>, <현대시와 삶의 인식>, <시의 이론과 실제> 등이 있고, 논문으로 <새를 표제로 한 현대시의 이미지 연구>,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삶의 인식 방법 연구> 등 수십 편이 있다.
1985년에 경희문학상
1987년에 시문학상
1995년 전라남도 문화상
1997년 광주문학상
1998년 윤동주문학상 수상하였다.
현재 호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비평가협회 이사. 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원탁시 동인
기픈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